문장 안에 머물다 보면, 나도 말하고 싶어진다
책을 오래 읽은 사람은 결국 쓴다. 처음엔 그저 누군가의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 문장이 내안에서 전율을 일으킨다. 읽던 문장을 덮고 펜을 들고 싶다. 누군가의 말을 듣던 사람이 이제는 나도 말하고 싶다고 느끼는 그 감정일까? 쓰고 싶다는 감정은 그렇게, 아주 조용하게 시작된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자주 멈춘다. 집중을 잃어서가 아니다. 내 안에서 문장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럴 때면 책을 덮고, 노트를 펴고, 나도 모르게 한 문장을 써 내려간다. 그것은 요약도 아니고, 필사도 아니다. 책을 통해 흔들린 내 마음의 반응, 그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읽는 행위가 나를 건드리고, 그 흔들림을 글로 붙잡고 싶어진다.
글을 써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었던 이유는 거창한 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무언가를 조용히 비워내고 싶었다. 책 속 문장이 내 안을 두드릴 때, 나는 그 감정을 어디로도 옮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적기 시작했다. 짧은 메모, 문장 하나, 낱말의 조각들. 그렇게 쓰는 일은 언제나 읽는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삶을 잠시 빌려 살아보는 일이다. 그 삶 속에서 내 마음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나만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어떤 문장에 울컥했고, 어떤 장면에서 멈춰 섰는지. 그것은 결국 나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읽고 있던 건 책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책을 덮은 후 그 울림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 스스로는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 그 감정을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기 위해 나는 자주 노트를 꺼낸다. 글로 쓰는 순간, 흐릿했던 감정은 또렷해지고, 말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은 제 얼굴을 드러낸다. 그렇게 나는 문장 하나에 기댄 채, 내 마음을 해석해나간다.
책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글을 쓰며 수많은 나를 만났다. 읽는다는 건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고, 쓴다는 건 나와 연결되는 일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결국 쓴다. 자연스럽게, 조용히, 때로는 필연처럼. 글은 그렇게 흘러나온다.
물론 처음부터 잘 썼던 건 아니다. 오히려 엉성한 문장, 과한 감정, 자꾸 반복되는 말투. 읽고 나서 다시 보기 부끄러운 글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시도를 사랑한다. 그 글을 쓰던 당시의 나는 진심이었고, 그 진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살아 있게 두는 일이다. 책을 읽고 느낀 그 순간의 울림을, 시간 속에 흩어지지 않도록 내 언어로 묶어두는 것. 그래서 나는 자꾸만 쓰게 된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그 감정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도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어떤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이 문장 읽고 마음이 이상했어요.”
나는 말한다.
“그거 써볼까? 왜 이상했는지,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쓰다보면 너의 마음을 알거야. ”
아이는 연필을 들고 조심스럽게 자기만의 문장을 만든다. 그게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다. 책을 읽고 자기 안에서 감정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는 일. 그리고 그 감정을 붙잡아보려는 일. 그것이 가장 순수한 쓰기의 동력이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쓴다. 읽지 않는 사람은 감정을 느껴도 그냥 흘려보낸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그것을 붙들고, 어떤 형태로든 남기려 한다. 꼭 글이 아니어도 좋다. 일기, 메모, 음성녹음, 낙서. 그 모든 것은 ‘말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첫걸음이다.
나는 매일 문장 하나를 읽고, 그 문장 하나로 마음이 흔들릴 때, 나도 한 줄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글이, 다음 날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읽는 사람만이 쓸 수 있고, 쓴 사람만이 자기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고, 쓰고, 다시 읽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읽는다는 건 결국 내 안의 이야기를 깨우는 일이고, 그 이야기는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손끝으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때, 난 나를 살아내는 사람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