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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죽었니? 살았니?

by 베리바니


이동장 안에서 연신 야옹거리던 루피는 며칠 동안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동장 문이 열리자마자 베란다의 세탁기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고 했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ㄱ'자도 몰랐다.


‘이러다 세탁기 뒤에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딱히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다른 일로 바빴다.

모든 소식은 X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세탁기 앞에 사료와 물을 두었지만 반응은 없었다고 했다.

이튿날은 사료 위에 고양이 간식까지 올려두었는데,

간식만 없어졌다고 했다.


“혹시 쥐가 있는 거 아니야?”

나는 반쯤 농담처럼 물었지만,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의심스러웠다.


삼 일째, 여전히 루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죽었니, 살았니.

애가 탔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루피가 사료 앞에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X에게 베란다에 숨지 못하게 밥그릇 위치를 옮기라고 말하며 루피에게로 향했다.


가는 내내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만약 강아지처럼 반가움을 표현하려다

내 손을 할퀴면 어떡하지.

하악질을 하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설렘은 한 줌이었고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현관문을 열자 루피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두려움은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풍성한 털, 초록빛 눈, 느릿한 자태.

그리고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아기 같았다.


루피가 천천히 다가와 말했다.

“냐옹—”


마치 ‘어서 와’라고 하는 듯했다.


나도 천천히 손을 내밀었고, 루피는 내 손에 머리를 비볐다.


어쩌면 ‘개냥이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고 써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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