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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한 지붕 세 가족

사랑둥이 하나, 둘, 셋

by 베리바니


초여름의 아침 공기는 조금 나른하다.

창문을 열면, 아직 덜 뜨거운 햇빛 사이로 작은 벌레들이 느릿하게 날아다닌다. 복층집 안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제각기 다른 속도로 하루를 맞는다.





바니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장난스럽다.

레이저 포인터 불빛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꼬리를 흔들며 벽을 향해 돌진하는 그 모습이 귀엽다가도, 가끔은 세상과 싸우는 돈키호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피는 그런 바니를 지켜보다가, 꼭 한 박자 늦게 움직인다. 낚시놀이 때도 바니가 낚싯대를 물면 루피는 잠시 멈춰 바라볼 뿐이다. 그것이 루피다운 양보의 방식이다.



루피는 늘 그런 식이다. 참을성 많고, 조용하며, 어딘가 품이 넓다. 꼬리를 밟혀도, 밥그릇을 빼앗겨도, 그저 "야옹―" 하고 짧게 항의할 뿐. 화를 내는 법이 없다. 하지만 그 단단한 침묵 속에는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루피는 이 집의 중심이자, 모두를 감싸는 온도 같았다.



심바는 아직 세상에 서툴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세우고, 손이 가까워지면 금세 그림자처럼 도망친다.

그러나 루피 앞에서는 다르다. 루피가 다가와 목덜미를 살짝 물면,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춘다.


그것이 혼내는 것인지, 혹은 보호라는 형태의 질서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두 아이 사이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기류가, 서툴지만 분명한 교감 같은 것이 흐른다.


가끔 심바가 실수를 하면, 루피는 다시 목덜미를 문다.



그럴 때면 바니가 삑삑이 장난감을 물고 와 그들 앞에 툭 던진다.

마치 “나도 껴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셋이 함께 있는 풍경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묘하게 잘 어울린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조화다.

(화장실 앞에 셋이 나란히 서 있을 때면 괜히 든든하기도 하다.)



밤이 되면, 우리 넷은 한 침대에 모인다.

바니는 내 왼쪽 옆구리에 등을 붙이고, 루피는 오른쪽에 기대고, 그 옆으로 심바가 조심스레 몸을 말고 눕는다.

네 가지 온도가 이불속에서 천천히 섞인다.

숨소리가 겹치고, 공기는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다.

나는 눈을 감지 못한 채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함께 맞은 첫 아침은 아직도 선명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바니의 코끝, 루피의 털, 심바의 발끝 위로 흘러내렸다.


그날 아침은 이상하리만큼 행복했다.

삶에도 정지 버튼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 순간을 눌러두고 싶었다.

세 아이의 숨소리와 내 숨이 겹치는 그 몇 분 동안,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가진 사람 같았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해주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미안한 감정도 올라온다.


고작 비바람을 피할 집과, 밥을 챙겨주는 것뿐인데, 그들은 매일 나에게 따뜻한 무조건적 사랑을 일깨워준다.


그들의 눈을 마주칠 때면 ‘괜찮아요, 이걸로 충분해요’라는 침묵의 언어가 들리는 듯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던 부드러운 빛 아래에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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