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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우리가 처음 만난 날 : 심바

쥐덫끈끈이에 걸려있던 새끼고양이

by 베리바니


건물 1층 물류창고에 고양이가 새끼들을 낳았다. 정확히는 옆 창고에 있다가 어떤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것인지 이쪽으로 이주를 한 모양이었다.


팔레트 안쪽으로 밤새 새끼들을 정성스럽게 옮긴 흔적이 있었다.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나 보다. 어미로 보이는 친구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바로 앞이 도로라 불안했지만, 엄마 고양이가 워낙 경계하는 탓에 새끼들을 계속 아는 척하기도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또 이주를 하다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서, 나는 최소한의 관심만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 가족이 이사를 갔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기어이 갔구나 싶었다. 이렇게 갈 줄 알았다면 몇 번이라도 더 훔쳐볼 것을. 아쉬움이 남았다.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팔레트 아래쪽에서 '삐약 삐약'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분명 아주 고요했는데, 순식간에 사이렌 버튼이 눌린 것처럼.


제일 작았던 막내 고양이가 쥐덫 끈끈이에 붙어서 울고 있었다. 급하게 기름을 구해 끈끈이덫과 분리시킨 후, 기름칠과 비누칠을 여러 번 한 후에야 끈끈이에 가려졌던 털이 드러났다.



새 양말을 잘라 옷을 만들고, 박스를 구해와 햇볕이 드는 곳에 조심스레 놓아두었다.

시간마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박스 집이 생긴 새끼 고양이를 1층 창고 앞, 처음 어미를 만난 장소에 놓아두었다. 혹시나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음 날 아침, 절망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어미가 자기 새끼를 몰라보고 박스 안에 있던 새끼 고양이를 밖으로 꺼내어 둔 채, 사료만 탐하고 있던 것이다.


한 손에 감싸질 정도의 작은 체구가 더 애처로워 보였다. 너무 씻어낸 탓일까? 어미가 자기 새끼를 못 알아본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며칠만 더 두고 보자. 분명 알아보겠지.'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그사이 새끼 고양이는 모두의 '박스냥'이 되어 츄르도 얻어먹고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주말에는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아직 박스 밖을 혼자서는 탈출할 수도 없는 친구가 걱정되었다.


다들 괜한 걱정이라고 했지만,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깜깜해진 밤. 몇 번의 고민 끝에 회사 앞을 찾았을 때, 박스 안에 죽은 듯이 잠든 새끼 고양이 위로 모기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안아 들었을 때, 모기떼가 흩어져 날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고민을 했던 이유는, 그날 그 자리에 가게 되면 평생 함께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미 함께하고 있는 두 친구들을 케어하기에도 이미 충분히 버거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날은 '주말만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주자'라는 단기 목적이 전부였다. 그리고 입양처를 찾아주자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회사 앞 박스냥이로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름도 붙여주었다.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가자는 의미로 심바.



집에 도착하니, 한 번의 베이비시터 경험이 있던 루피가 기가 막히게 달려 나와 앉아 있었다. 경계하듯이 하악질 한번 해주고는, 냄새를 맡더니 이내 목덜미를 물고 침대로 향했다. 할짝할짝. 심바는 싫다고 삐야악 거리며 도망 다니다 잡히기를 여러 번. 마치 고양이판 경찰과 도둑 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루피는 내 걱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주말 내내 육아를 담당해 주었다.



나는 입양처를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입양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품종묘를 기르고 싶은데, 그전에 고양이를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병원에서도 입양처 찾기가 쉬운 색상은 아닐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카오스 고양이는 털색깔 때문에 호감도가 높지 않다고..)


아직 두 달도 되지 않은 작은 친구. 내가 해준 거라곤 고작 양말을 잘라 만든 옷뿐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니 눈물이 펑펑 났다.


이동장이라도 하나 사서 보내야 하나 싶던 찰나,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남자친구가 말했다.


"아직 어려서 접종 한 번도 못 시켰으니까, 1차 접종시킬 때까지 보호하고 그 후에 보내도 늦지 않아. “


"그러다가 입양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나는 고민하던 속마음을 꺼내었고,

남자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키워야지 뭐."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금요일 밤에 굳이 그 박스를 확인하러 갔을 때부터, 그는 이미 ‘한 마리가 더 늘겠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또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늘었다.



아직도 겁 많고 까칠한 카오스고양이 우리 집 막둥이, 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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