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루피는 노르웨이 숲 고양이였다. 장모종의 풍성한 털은 매력적이었지만, 집 안 가득 흩날리는 털과 떡져버리는 모질은 언제나 나를 고민하게 했다. 결국, 미용을 결심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투명한 돔이 달린 '우주선 가방'을 샀다. 루피와 함께 외출할 생각에 매우 들떠 있었다. 하네스로 산책을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한 후였다.
예약된 미용실은 집에서 10분 거리라고 했지만, 아무리 걸어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루피는 가방 안에서 토를 하고 변까지 보았다. 낯선 상황이 무서웠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져 미용실에 전화를 걸자, 주소를 수정하지 못하고 이전했다고 했다. 나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이전된 미용실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 루피는 온몸이 엉망이었다. 미용사가 조심스레 루피를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 순간 나는 왠지 루피를 팔아넘긴 배신자가 된 기분이었다.
순하던 루피는 낯선 공간에서 다른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처음 듣는 울음소리, 날 선 하악질, 세워진 발톱. 그리고 원망이 가득한 눈빛. 그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웠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미용을 마친 루피는 어색하게 걸음을 옮겼다. 짧아진 털 때문일까, 한층 작아진 것 같았다. 나는 더러워진 우주선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루피를 품에 꼭 안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루피는 어색한 듯 계속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야옹거렸다. 내가 어딘가 기대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 곁을 파고들었다. 그날 밤, 루피는 이불을 긁느라 잠을 설친 듯했고, 나는 급하게 고양이 스웨터를 주문했다.
옷도 잘 입고, 마치 강아지처럼 내 곁을 따랐던 고양이. 그때의 나는 고양이의 세계가 원래 이토록 순하고 쉬운 줄로만 알았다.
지금은 물론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루피는 나에게 긍정적인 착각을 안겨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첫 고양이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