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이제 슬슬 투석이나 이식 준비하래

2012년 봄~2017년 여름

by 육부인

어렵지 않았던 5년


남편의 정기 검진 날마다 주요 수치를 캐묻고 점검했던 나.

어느 순간 부터인지 좋아지던 수치는 그 움직임을 멈추었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내 신경은 점점 더 아이들에게만 치우치게 되었다.


남편의 만성피로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적응한 것인지 그리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단지 배탈이 나거나 감기가 왔다 가면 확실히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으며, 일시적으로 수치가 나빠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5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고 보는게 맞겠다.


나이도 젊고 다른 합병증도 약간의 고혈압 뿐이며, 신장의 주요기능 몇가지는 정상에 가까워 관리가 어렵지 않았다.

조혈 기능도, 소변량도 좋았기 때문에 빈혈이나 부종은 없었다. 먹는 것도 싱겁게, 고기를 적게 먹는 것만 신경 쓰면 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부전증의 진행 상황을 생각하지 못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만 가면 최소한 나이 50 정도까지는 문제 없겠지...'


투석은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일거라고 생각했다.


"오빠는 몸 괜찮으셔?"

친구들의 안부에도

"어차피 좋아질 수는 없는 병인데.. 뭐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남편의 두번째 뒷통수


2017년 7월 중순 즈음...

그날은 6주에 한번 있는 정기검진일이었다.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기 전, 남편이 나지막히 말했다.

"오늘 의사가..."

이어지는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슬슬 투석이나 이식 준비하라고 그러네."


어? 소리 한 마디 뿐.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투석 이야기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늘 들은 말이 충격이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인 모양.

뭐? 수치가 어느정도이길래? 그동안 왜 얘기 안 했어? 하고 쏟아낼 법도 한 상황이었으나 그냥 그 착잡한 표정만 봐도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무뚝뚝하게 필요한 말만 하는 의사, 궁금한게 없고 무신경한 환자의 조합이 이렇다. 그냥 그 뿐... 누굴 탓하겠는가.


이어진 설명은 이런 것들이었다.


"제일 좋은건 이식이래. 부모님은 연세가 있으시고 형제 신장 받는게 좋지 않겠냐고.. 동생은 지금 태국에서 산다고 하니까 지금 형을 살려야 하는데 그게 문제냐고 그러더라.

그리고 투석은 혈관투석이 있고 복막투석이 있는데 복막투석하면 밤에 잘 때만 해도 된대. 하게 되면 복막투석이 나을거같긴 한데... 이게 배에 구멍을 뚫고 관을 삽입하는거라 수영장같은데를 못 간다 그러네."


이 대목에서는 둘이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럼 이번 여름에 수영장 가는게 애들한텐 아빠랑 가는 마지막 수영장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휴가 계획을 세워놓고 수영장 간다며 들떠있는 아이들 얼굴이 스쳤다. 순간 모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현실로 닥쳤다. 덤덤하게 받아들여보려고, 당사자인 남편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옆으로 돌아 앉아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현실 직시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울고, 혼자 있다가 울고, 회사에서 울고... 남편 없는 틈에 자꾸 눈물이 나서 혼 났다. 하지만 그것도 이틀. 현실을 받아들이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외과의사인 친구에게 이식에 대한 것을 몇 가지 간단히 물어보았다.(신장은 내과이지만 이식은 이식외과가 담당) 그리고 학창시절 시험공부 벼락치기 하듯, 오래 전 가입만 해두었던 인터넷 신장병 환우를 위한 카페의 게시글, 댓글들을 틈 날 때마다 정독했다. 중고책방에서 10년 전 출간된 신부전증 관련된 도서를 사서 읽다가 너무 괴리감이 심해서 마땅찮아 하던 중, 카페에 추천 도서가 떴길래 바로 주문해서 독파해냈다. 이 책은 진짜 강추다.



30년 전 이식수술을 하고, 10년 전부터 다시 투석을 하고 계신 고모부가 계셔서 고모를 찾아뵈었다. 이식과 투석의 비하인드스토리, 실생활을 들을 수 있었다.


EBS <명의> 다시보기를 통해 신장 이식 이야기를 시청했다. 공부하려고 봤는데 감성 충만해져서 질질 짜며 봤다.


어쨌든 이것으로 웬만한 궁금증은 다 풀렸다.


놀랍게도 최근 몇 년 사이, 의학 기술이 참 빠르게 진화해있었다.

비혈연지간에도 적절한 전 처치와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이식이 가능한 케이스가 늘었다. 덕분에 부부간 이식이 부쩍 늘었다. 사람 마음 다 똑같나보다.


장기 기증이라는게 해주면 너무나 고맙지만 해달라고 말을 먼저 꺼낼 수는 없는 문제이다. 담당교수 말대로 돈은 갚으면 되지만 이건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서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해서도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형제든 부부간이든 마찬가지... 분위기에 떠밀려 의무감에 해서는 안 되며, 그럴 경우 공여자(기증자)에게 심각한 정신과적 질병이 동반되기도 한다.


지금 시점에서 남편이 이식을 받고 삶의 질이 나아진다면, 나빠지지 않는다면 최대 수혜자는 남편보다 오히려 나일지도 모른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다. 다른 가정에 짐을 지우기도 싫다. 여러모로 동기는 충분했다.


내 신장을 이식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 이제... 양가 부모님들께 상황을 말씀 드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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