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서 실전 적용기
어릴 때, '흔한 누나의 폭력'에 시달리던 내 동생은 나중에 누나의 아이들이 걱정이 된다고 했다.
큰 아이를 낳고 만 3년이 지나도록 스스로를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왔다가 요즘 들어 동생의 말이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전에는 육아서를 읽으며 '그래 그래, 난 역시 잘 하고 있어'라고 자화자찬했는데, 최근에 읽는 육아서들은 모두 나를 향해 쓴 책들 같고, 또 한 줄 한 줄이 전공 서적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 그 것은 바로 나에게 부족한 '어떤 것들'이 필요한 시기가 왔음을 의미했다.
오늘 아침부터 긴장을 해서일까. 머리가 아프다. 어젯밤 평소보다 30분 가량 늦게 잠든 첫째가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겨워했다. 그리고 또다시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 바로 어젯밤만 해도 유치원 너무 재밌다며 유치원 놀이를 했던 녀석이 아침이 되니 태도가 돌변했다. "너 또 왜..."라는 말이 시작되려던 찰나, 육아서에서 그런 말은 금기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꾹 참았다.
"주은이가 많이 졸리구나, 피곤해? 그럼 엄마가 옷 갈아입혀줄게."
살살 구슬려보아도 아이의 입에서는 "싫어" 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슬슬 내 심장박동이 정상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속으로는 '정말 너 왜 그러냐, 엄마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늦어서 유치원 버스를 태우긴 글렀다. 저번 처럼 힘으로 옷을 갈아입히고 억지로 끌고 나가다가는 또 발버둥을 칠 것이고 그러다 다쳐서 또 같은 체육복에 피를 묻히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갈아입히려고 꺼내놓은 목요일의 체육복을 보자 그 날의 잔상이 트라우마처럼 머리를 스친다. 그 때의 그 괴물같은 짓은 그만두기로 하자.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잠깐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전혀 화나지 않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엄마가 주현이부터 어린이집 금방 데려다주고 올게. 같이 갈래, 아니면 집에 있을래?"
잠시 내가 해탈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아닌가보다. 하루 종일 두통이 가시지 않는 것을 보면)
집에 있겠다는 선택을 한 첫째를 두고 차분한 목소리로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혼자 두고 나간다는 것이 좀 꺼림칙했고 혹시 엄마를 찾으며 울진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저번처럼) 다투다가 화를 내고 나온 것도 아니고 본인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괜찮을거라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유치원 버스를 만나, 선생님께 상황을 대략 설명하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만난 딸의 친구 엄마들도 함께 걱정해주었다
"주은이가 잠이 좀 부족해서 아침에 개운하게 깨지 못 해서 그랬을거예요."
나 대신 친구 엄마들이 딸의 마음을 대신 읽어줬다. 그래, 그랬겠구나.
집으로 돌아오며 책에서 강조한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히 이유가 있을거야.
이 말을 되뇌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혹시 울고있지는 않을까 하면서 서둘러 문을 열었다.
딸은 방금 유아변기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으며 자기가 쉬하고 휴지로 닦는 것 까지 했다며 나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잘했어. 나는 엄마미소를 지으며 신발을 벗었다.
열흘 정도 어색함과 어설픔 속에서 계속 연습하고 있는 '~구나'. 남편도 내게 이제는 꽤 자연스러워졌다며 칭찬해줬다. 이제 이 구나체가 필요한 타이밍.
"주은이가 아까는 졸리고 피곤해서 옷 입기가 많이 힘들었구나. 잠이 덜 깼는데 자꾸 옷 입자고 해서 싫었지?"
아이는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참 생각보다 어렵다. 시간 약속이라는게 있고 늦었을 때 발생하는 손해라는게 있는데 뭐든 자기가 혼자 하겠다는 5살짜리를 보채지 않고, 다 해주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또 한 번 인내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왜냐고? 5살짜리는 이상하게 재촉할 수록, 도와주려고 할 수록 더 반항하고 신경질적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늦어버린다. (해준다는데 왜?!)
"우리 조금만 서두르자, 시간 다 됐다." 정도의 응원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NO!
아침엔 어차피 유치원 버스도 보내버린 마당이라 마지막 설득 단계에서 진심으로 여유를 부렸다.
"좀 피곤하니까 우리 아주 천~천히 준비할까?"
잠이 다 깬 딸은 이제 흔쾌히 동의했다. 천천히 아침을 먹고, 체육복을 입고, 머리를 묶고, 원하는 머리핀을 고르고, 아끼는 공주님 머리띠를 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유치원이라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유치원 가는 길엔 곳곳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었다. 기분 좋은 등원길이었다.
개나리보다도 더 활짝 핀 딸의 미소 덕분에 더욱 행복한 아침이었다.
딸들에게 잘 하는 엄마는 아니다.
편한 사람들한테 쉽게 욱하는 성격이고, 또 잘 울컥한다. 항상 일촉즉발이다. 살얼음판이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오늘도 노력했다. 용썼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제법 크다. 그래서 너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는 위로의 말도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내려놓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놓아버리고 아이에게 내 멋대로 굴었을 때에 오는 죄책감과 후회보다는 그 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견딜만 하다고 본다. 두 가지를 다 겪어보니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나는 좋은 엄마의 피곤한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자그마한 헤프닝들 중 하나 잘 넘겼다고 뿌듯해서 쓰는 오늘의 이야기...
매일 인내하고 믿고 공감해주고 기다릴 줄 아는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참 민망하고 낯 뜨겁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