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기저질환자가 산다

이식수혜자들의 어느 해 보다 긴 겨울

by 육부인

해마다 겨울은 우리가족에게 유난히 묘한 긴장을 선사하는 계절이다.


유치원, 학교에서 전염병이 돌면 항상 2등으로 걸려오는 첫째. 초겨울 폐렴, 한겨울 장염, 늦겨울 독감 중 하나는 피해가지 못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그 어린 것 보다도 더 신경쓰이는 인물이 있다. 바로 2년 반 전 신장이식을 받은, 애들 아빠이다.


2년 반 전부터 첫째 큰딸에게서 열이 난다 싶으면 남편부터 본가로 대피를 시키곤 했다. 누군가 그냥 기침 증상만 있어도 집 안에서 꼭 마스크를 써야 했다.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아이들에게 미열만 있어도 독감검사를 시켜대서 두 달 사이 우리 큰딸은 독감검사만 세 차례나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어린 두 딸에게 우리가 그만큼 유난을 떨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상황을 이해할 만큼 자란 아이들은 납득을 하면서도 검사를 받으러 가며 울었다.


장기를 이식 받은 이식 수혜자들은 평생 정확한 시간에 맞춰 면역억제제라는 것을 복용한다. 면역억제제? 면역증강제는 많이 들어보았으나 면역을 억제시키는 약을 먹는다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참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식수혜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 남의 장기를 이식 받는다는 것 자체가 몸에서는 어떤 이물질이 몸 속에 들어온 듯 인식하게 되는 큰 사건이다. 그래서 몸의 면역체계가 새 장기를 공격하기 전에 그 면역력을 뚜욱 떨어뜨려 놓는 것이 바로 면역억제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본인에게 간을 이식해준 남편이 바람을 폈다며 그냥 죽을랍니다 하던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면역억제제를 안 먹어서 바로 거부반응이 왔고, 고용량 스테로이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 장면. 그만큼 이식환자는 면역력이 높아져버리면 안 된다.


코로나 이후 모든 사람들이 면역력 싸움이라며 각종 건강식품과 영양제가 불티나게 팔릴 때에도 남편은 면역력을 낮추는 데 열중했다. 한창 신천지 발 코로나 확산으로 난리였던 2월 말에는 오히려 면역력을 바닥까지 낮춰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단 3일간 면역억제제 복용량을 잘못 지켰다는 이유로 급성 거부반응이 찾아왔고, 드라마의 그 중년여인처럼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고, 항체를 걸러내는 혈장교환술을 받느라 입원해 있었다. 남들은 면역력으로 싸우고 있을 때 우리는 면역력과 싸우고 있었다.


면역의 힘이 절실한 호흡기 질환에 걸릴 경우, 약 조절은 난이도가 몹시 높아진다. 적지 않은 케이스에서 이식 받은 신장과 폐,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신장이식 수혜자들. 면역을 올려 폐를 살리고 신장은 포기, 투석으로 가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나마 신장은 힘들어져도 투석이라는 차선책이 있어 다행일까. 요즘같은 상황에서 다른 장기를 이식 받은 수혜자분들의 걱정과 불안은 헤아리지도 못 하겠다.


전에 없던 펜데믹으로 모두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지금. 날은 성큼 여름을 달리고 있으나 마음은 어쩐지 끝 모를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다.


유난히 이 겨울이 두려운 기저질환자와 그 가족들 모두 지치지 말고 끝까지 함께 잘 이겨나가길. 마음 속 깊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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