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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liz Apr 06. 2024

이별에 익숙해지는 척

가족과의 이별

내게 이별은 익숙지 않다.

모두에게나 이별은 익숙지 않을 것이다.


그간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한때는 소중히 여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내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말이다. 상대가 친구였을 때도, 연인이었을 때도 잔상은 꽤 오래오래 남았다.

어른들이 그래서 '한 번의 만남도, 인연도 가벼운 것은 없다.'라고 그리 말씀을 하셨나 보다 하며 조금씩 그 세상을 알아간다.


내가 선택한 이별이든, 상대가 선택한 이별이든,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별이든

그래도 그 사람과 나와의 인연이 끝이었지, 세상의 끝을 마주하는 것이라곤 상상해 본 적이 없기에.

실컷 눈물을 흘리고 마음껏 아파하면서 슬퍼하되 그래도 각자의 길을 응원하기도 하고, 혹은 내가 더 멋들어지게 제대로 살아보겠다며 별난 의지를 담으며 그렇게 이별해 왔었다.


하지만 어느덧,

내가 선택하지도, 상대가 선택하지도 않았음에도 '뚝 끊어져 버린' 이별을 경험할 나이 즈음이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다녔던 장례식에선 그저 사촌 오빠가 음료수를 참 많이도 콸콸 마신다는 것, 하얀 예쁜 리본을 머리에 꽂은 이모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 그 정도가 내 기억 속에 남았더라면.

이제는 이별의 시작부터 마지막이, 그리고 그 이별을 마무리해야 하는 사람들의 처음과 끝이 너무도 생생하게 몸에 자리 잡았다.

믿기지 않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원하든, 상대가 원하든, 환경이 개선되든 어떻게든 다시 이어지게 되지 않을까?라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내게 조금도 남아 있지 않는 이별을 마주했을 때.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준비되지 않은 내 마음일 때

밀려드는 후회와 아쉬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단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이 상황에서 나는 그저 참담했다.


그럼에도 마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펑펑 울어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은 자들은 이별을 마무리지어야만 했다.


엄마는

딸에게 맞지 않은 상복의 사이즈를 변경하며, 흘러내리는 치마를 옷핀으로 집어주기도 했으며

너무나도 많이 찾아온 화환들이 점점 이중으로 겹쳐질 때 관계자에게 불려 가 잔소리를 듣기도 했고

장지로 이동할 때 관을 드는 인력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의논을 해야 했다.

슬퍼하다가도 눈물을 닦다가도, 반가운 조카들을 보며 웃음 짓기도 하고

조문을 하러 온 조문객과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을 향해 눈물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그 모습 앞에서 또 무참히 슬픔에 젖어들기도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전날 밤, 할머니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다음 날 아침에 올라갔을 때

아빠와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담담했던 나였지만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정중앙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마자, 옆을 지키고 있는 한없이 여린 딸, 그리고 나의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저 자리에 계신 분이 내 할머니라는 게 믿을 수 없어서.

'꼭 올라가야지 할머니가 나를 기다려주실 거야'라고 생각했던 내게, 마지막이라는 것이 그저 창연할 뿐이라. 그렇게 눈물이 났다.

엄마를 왈칵 껴안았던 게 얼마만일까. 엄마의 눈물을 본 것이 얼마만일까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그곳을 가득 채웠다.


그랬다.

얼얼했다.

이번의 이별은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조금도 마음은 담담하지 못했고

마음껏 슬퍼하며, 원망하거나 속상해하지만도 못했고,

뚝하고 끊어진 게 다가 아니라서, 이별의 마무리를 남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또 착실히 수행해 나가야 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다시는 함께할 수 없는 끝.


할머니를 추억하는 장소에 갈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로이 보였다.

할머니 공간의 냄새

할머니가 가지런히 모아둔 살림살이

이별을 직감한 듯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창고

할머니가 앉아계셨던 예배 자리, 그 옆에 계셨을 할머니의 정다운 친구들.


개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할머니의 다이어리'

할머니는 시를 쓰셨다. 아픈 시간들을 흘러보내며, 슬픔만이 아닌 즐거움으로 견뎌내려고 했던 할머니의 흔적들이 글로 쓰여 있었다. 더 많이 웃자. 더 많이 행복해지자 라는 시


그리고 한편에 적혀있는 문장들

짜증나, 속상해, 힘들어


내겐 늘 할머니로 계셨던, 까칠한 모습도 있었고 예민한 구석도 있었지만 늘 나의 어른이셨던 할머니

할머니가 남겨놓은 그 솔직한 마음들에 오히려 더 마음이 촉촉해졌다.

그럼에도 우리 앞에선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셨던 그 내리사랑의 마음에, 할머니가 더 보고 싶었다.


이 이별은 참 가혹하다. 적응할 수도, 익숙해질 수도 없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내게 무언가 맡겨 놓은 양 그 감정까지 잘 끝맺으라고 하는 이 이별에 나는 완패를 당해버렸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안다. 이제 이 이별들이 더 잦아질 것임을.

내가 선택하고, 상대가 선택하는 이별보다는 이 이별에 더 익숙한 척 나아가야 하는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조금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이별이고

아무리 담담한 척 해도 담담해질 수 없는 이별이기에

마음의 준비, 이런 예사스러운 말은 집어치우고

그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아낌없이 마음을 쏟아붓고,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보련다.

그게 정말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가 아닐까.


할머니와의 이별은 지금도 여전히 낯설지만,

남은 나의 시간들을 착실히 또 살아내며, 할머니와 다시 만날 시간을 기다려보련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지만, 익숙해지는 척 흘려보내며 그렇게 다시 생을 살아가보기.


할머니가 키우시던 식물들

할머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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