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reamingliz
Apr 13. 2024
우당탕탕 초보 운전 적응기
30대의 불편하지 않은 '새로운 무엇' 체험기
도로 위의 모든 것을 감각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에는 그저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드라이브를 만끽해 왔기에 그저 풍경, 공기, 햇살 정도만이 눈에 보였다면 이젠 모든 것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새롭게 감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요 며칠.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며 마지막 한도에 이르러 결국에 시작하게 된 운전 연수다. 이젠 더 늦었지만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운전'을 내 인생에 끼워 넣었다.
운전을 하고 얼마지 않아서 잠들기 직전까지도, 깨어나기 직전까지도 운전을 하는 악몽을 꿨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이젠 남 일 같지 않은 그런, 하루가 시작되었다.
신경 쓸 것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전에 해봤던 카트라이더 게임에서는 벽에 쿵쿵 박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앞으로 갔더랬지. 하지만 실제 도로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분명 일직선처럼 보이는 직진 도로이지만
조금씩 핸들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삐뚤빼뚤 차선을 지키지 못할 때 투성이고
그렇다고 조금 핸들을 까딱 하고 나면 너무 많이 돌려서, 돌리는 것이 아닌 '힘을 주는' 느낌으로 해야 한다는 코치 앞에서 갸우뚱
멀리 앞을 바라보면서, 도로를 통과한다는 느낌으로 차선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차선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양쪽 사이드 미러의 간격을 살펴봐야 하고, 그렇게 차선을 잘 유지해나가나 싶으면 금세 길은 구불구불 곡선 천지다.
주차장엔 기둥과 흐릿한 주차선으로 빼곡한데,
아, 주차선에 물린 주차 차량은 어찌나 많은지.
아! 왜 그간 운전자들이 주차장에서 탄식했는가
그제야 알아차리는 나.
욕을 안 할 수가 없겠는데? 그래 경험해 봐야 안다 그랬다.
주행은 자신 있었다. (이 또한 초보의 오만한 낙관이지만)
기능도, 도로 주행도 문제없이 만점을 받아낸 고로 나름대로 베스트 드라이버의 자질이 있지 않을까 자신만만하던 차에 주차라는 난관을 마주했다.
강사님이 말씀해 주신 것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저 아바타일 뿐,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자로서 존재할뿐.
핸들을 왼쪽으로 세차게 감고 D
사이드 미러로 보았을 때 내 차량이 주차선 모서리에 닿았다면, 그 꼭짓점을 넘어갔을 때 R.
핸들을 중립으로 한 다음 11자가 되게끔 만들고 R
'주차선 모서리는 어떻게 보나요? 어느 정도로 닿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마음속으로 무성히 생기자마자 바로 다음 질문이 들어온다.
" 지금 주차 양옆 간격이 고르지 않죠? 그리고 운전자석 간격이 너무 좁은데, 이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에 나는 마음속으로 답한다. '그냥 좁아도...이대로는 안 될까요...?'
그때부터 빙빙 돌아버리는 내 머릿속과 이전 것은 다 지났다는 그 성경구절이 머릿속을 탁 치고 흘러간다.
이런 미숙함은 최근에 나에게 참 낯선 것인데.
신규때와 다르게 경력이 조금씩 쌓이는 게 맞는지, 새로운 업무를 받아도 크게 헤매지 않고 해결해 나가곤 했던 근래의 나는, 이렇게 이도저도 하지도 못하는 내 미숙함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넋 놓고 바보처럼 가만히 있었던 게 얼마만인가. 하는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은 낯섦
수학 문제 같았다.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더라도, 계속 반복해서 실수해서 틀리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킬러 문항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쉬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킬 당할 수 있는 그런 문항
그런 문항을 대비해서 나는 어떻게 해결해 나갔더라?
생각해 보니 '반복'이었다. 비슷한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서 헷갈리는 것을 바로 잡고, 문제의 감을 익히는 것. 잘못된 오개념을 바로 잡기 위해선 계속 그 오개념을 풀어나가기 위해 부딪치는 수밖에.
그래서 좀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풀어나가고픈 마음도 생겼다. 그건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집에서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주차의 달인 게임도 해보며 계속해서 감각으로 익혀보는 동안
무수히 많이 틀렸다가 마지막 한 번 제대로 익혔다는 느낌이 왔을 때, 그때 느껴지는 온몸의 짜릿함.
새삼 반갑고, 뿌듯하고 그리고 빨리 또 다른 경우에도 대입해서 맞혀보고픈 그 마음이 참 반가웠더랬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점점 그 정답으로 돌아오는 원의 반지름이 점점 줄어드는 그 감각
그래서 이 새로운 감각들이 내게 하루의 활력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새롭게 감각하게 된 도로의 모든 것들, 그리고 미숙함을 풀어나가는 데서 오는 짜릿함. 도파민이 터지는 그 소리.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무엇인가에 초보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해본 것보다는 해보지 않은 것이 더 많을 테니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 오는 관성을 이겨내고, 무언가 새롭게 선택하고 도전해 보는 이 감각들에 더 설레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우당탕탕 적응기가 그냥 힘들지만은 않다. 적응하는 설렘도 반갑고, 도전하는 이 마음가짐도 반갑다.
적응을 잘 해내서 초보의 설렘을 귀여워하며 상기할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한번 달려보련다.
P.S 이러고 나서 남편과 동행한 도로에서 나는 다시 좌절을 맛본다. 글을 이상적인 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으나, 현실은 아직도 우당탕탕 적응기.
그럼에도 내일 운전할 생각에 기분이 좋은 나,
이 정도면 일관성과 낙관성이라면 암, 해피엔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