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고 싶다는 소망

잊히는 것도 꽤 괜찮다.

누군가에게

스스로가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발자취가 너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란다.

오래 기억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마치 회원가입 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성함은?'라는 질문에 누군가가 내 이름을 써주진 않을까? 하는 귀엽고 앙증맞은 기대감 같은 것.

하지만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연차가 쌓이는 것과 자신감은 비례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나의 부족한 면모를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가 맞겠다.

'잘해보겠다.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경력에 따라 쌓이는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존재일 수 있음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말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 동시에 나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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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해.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걸 꿈꾸는 건 헛된 일이야. 다만 갈등을 지혜롭게 잘 풀어나가고 그 가운데서 함부로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 바라보아야 하는 이상이 아닐까. 자신과 상대를 함께 보호하는 거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어.

내가 상처 입고, 내가 억울한 것에 몰두해서 그 순간의 감정에 빠져 있을 때가 더 많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진 않았을까?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심연으로 가라앉게 내버려 두진 않았을까? 우린 이것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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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다고 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다가, 한껏 욕심을 부렸다가

돌이켜서 돌아보았을 때,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 입는 일이 생길까 봐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보았다.

위를 향해 가지 않고, 그렇게 기억에 남는 것을 목표하지 않고

아래에서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

설사 그리 되더라도, 그 기억이 상대를 오래도록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것을 목표로 두면 그래도 '잘 살아왔다.'라고 후에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가졌던 앙증맞고 귀여운 기대감보다도 더 후련할,

마음 편히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는 그런 감사가 내 앞에 자리하지 않을까 하고 꿈꿔본다.

괜찮았지.

즐거웠지.

그래도 이만하면 꽤 잘 보냈던 것 같지

하며, 그냥 편안히 기억 속에 묻어둘 수 있는 편안한 추억으로 남기를.

그런 한 해 한 해를 함께 잘 보내어 시간 속에 잘 흘러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 거라면, 잊히는 것도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