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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liz Apr 21. 2024

어른 행세

어른 행세

새삼, 어른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낀다.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지니고도 어른이라는 탈을 쓰고 어른 행세를 하려니

온몸이 가렵다.

이 간질간질함을 근질근질함으로 느끼는 건 나뿐일까. 썩 반갑지 않다.


수행평가를 앞둔 아이들이 부담을 토로하며 나에게 이런다. "집에 가고 싶어요 엉엉."

그에 "나도 집에 가고 싶다."라고 응하면, 다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다.

'아니 선생님도? 어른도?'


그 말을 듣자마자, 수많은 주위의 어른들이 솔직한 내면을 숨기고 어른 행세를 해내왔던 흔적들이 눈에 밟혔다. 대개 아이들의 엄마, 아빠겠지.

직장일을 해내고, 부부로서의 가정의 일만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는데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면 더 많은 어른 행세를 해내야 하겠지?

'어른이기에 마땅히 해야 한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고 말이다.


다만 내려놓고, 넣어두는 어린아이 같은 본능적인 내 마음 대신 더 큰 마음, 더 큰 행복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어른 행세를 해보려 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궁금하다.

30대의 나는 어른 행세로 느끼는 이 모든 것이,

나이 들면 성숙하고, 무르익은 어른의 모습 그 자체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인가를.



나에게도 상처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눈에 훤히 보일 때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처가 더 깊은지, 더 오래됐는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교통사고에서도 외상 환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피 하나 흘리지 않는 내상환자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상처는 더 클 거라고.

아프다고 소리치는 강도가 점점 셀수록, 그 사람의 고통은 더 클 거라고 쉽게 판단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기 쉽지 않은데 타인의 상처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한가.

누가 그렇게 타자의 감정에 그리 집중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 상처를 자주 잊어버린다.

내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서툴다.

마음을 전했을 타인의 반응에 기대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가끔 누군가의 상처를 듣다가 묻어두었던 내 감정을 다시 되새기게 될 때가 있다. 아 나도 이렇게 아팠었지. 하고 그럴 때마다 가끔 아프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는 상처받지 않은, 항상 사랑만 받았을 것 같은 나로 규정지어 말하곤 하면 가끔 쓸쓸해지곤 한다. 드러내는 것이 좋았을까? 나는 그런 사람인 걸로 남으면 되는 걸까? 하고


여전히 어렵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여겨지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지 고민이 된다.

이토록 내 감정에 서툴고, 감정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것에도 익숙지 않은데...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자각하고 고민하는 나를 보니 30대의 사춘기를 제대로 겪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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