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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liz Apr 07. 2024

남편의 스포츠 사랑이 부부의 스포츠 사랑이 되기까지

우리 부부의 스포츠 사랑

독립 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취미활동이 있다.

바로 프로 스포츠 관람.

흥이 많고 승부욕 하나는 기가 막힌 나로선 스포츠 관람을 왜 진작에 취미로 삼지 않았나 할 수도 있는데

아버지와 오빠는 정말 단 한 번도 티비로 프로 스포츠를 시청해 본 적이 없었다. 보고 들은 바가 없기에 나에게도 이것은 선택지로 여겨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뜨거운 마음으로 올림픽,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는 건 응원하는 거고, 프로 야구 언제 어느 때에 하는지도 몰랐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직관을 하러 간다, 중계를 본다 하는 얘길 옆에서 한다 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뿐다. 아무래도 전자의 스포츠 사랑은 나로선 빛나는 애국심었지 않았을까.


그러다 결혼을 했다.

처음 살던 집은 투룸의 작은 오피스텔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집순이, 집돌이인 데다가

같이 저녁 한 상을 차려 먹고 나면 그날 티비 앞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었다. 집에서 가장 넓은 거실이 활동하기엔 제격이었다. 수다도 떨고 빨래도 개고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소파 앞 식사하기까지 마스터하고.


그러다 자각하게 된 것이

어느 날부턴가 채널이 생전 가보지도 못한 800-900번대에 있으며, 주야장천 선수들이 몇 시간 동안 야구만 다 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다 잠깐 이어지는 스포츠 하이라이트 소식이 아니었다는 걸 그때야 자각했다. 빨래를 널다, 집안을 청소하며 움직이며 보는 티비 채널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소파에 누워 잠깐 핸드폰을 만질 때도, 남편과 수다를 떨며 bgm 마냥 틀어져 있던 티비 속 화면도? 어라?


그때야 알았다.


아 이게 프로야구구나!

야구는 거의 매일 하는구나

매일 같이 이렇게 길게 하는구나

이 야구를 매일 온 마음을 다하여 몰입하며 보는 사람이 내 옆에도 있구나 하고.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내 성향 상 오후 여가시간에 남편이 야구를 자주 본다고 해서 불편한 것은 없었다.

, 큰 75인치 화면에서는 야구를 보고, 별개로 노트북으로 농구 영상을 보는 것은 다른 문제였지만.

(하나 더, 외출 시에도 핸드폰을 문자 중계라는 걸 보고 있다는 건 또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지만.)


누군가의 취미를 공유하는 건 꽤 재밌는 일이었기에.

나도 같이 응원하며 절로 응원가도 따라 부르고 그날의 승패를 같이 관전하기도 했다. 응원가는 어찌나 중독성 있는지 가끔 꿈 결에 응원가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다른 것을 내팽개치고 하는 것이 아닌 잘 조절하며 즐길 수 있는 취미로 썩 괜찮아 보였다. 경기에서 진 후에 감정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느냐는 장담할 순 없지만, 경기를 보고 분석하고, 예측하고, 응원하는 그 과정이 꽤나 긍정적이고 즐거운 에너지를 끌어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야구 용어들로 캐스터 마냥 전해주는 남편이 조금 멋있어 보였는지도!?


덕분에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렸.

옆에서 주워들은 게 많아지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직장에서는 스포츠로 뽐을 부기까지 하니 아마 이 소식을 접한 남편은 무척 흐뭇해할 테다.


지금은 제대로 취미로 즐겨보고자 유니폼도 구입한 상태. 직관의 에너지까지 제대로 느껴볼 마음에 유니폼 배송을 기다리면서 잔뜩 설레어하는 중이다.

각자 응원하는 팀은 다르지만 즐기는 마음은 점점 비슷해져서 이제는 남편의 스포츠 사랑에서 우리 부부의 스포츠 사랑으로 얘기해 봐도 될 정도라지 아마?


이 정도면 꽤나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스스로 흡족해하며 남편에게 한마디 전해본다.


야구는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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