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낯설지 않은, 새로운 취미

by Dreamingliz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빠졌다. 집 베란다에 하루종일 나가있는 엄마를 보며 타박하던 딸은 독립을 해서 새 가정을 꾸린 후 가장 먼저 식물 키우기라는 취미에 빠져들었다. 이것 참. 그게 왜 제일 먼저 생각났을까?


처음엔 소소했다. 귀여운 피쉬본과 다산의 상징인 필리아페페

둘을 선택했던 건 키우기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소소한 건 내 마음이었기에, 식물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할까 봐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취했다.

잘 죽지 않는다는 다육이와 죽이는 게 더 어렵다는 페페라는 선택지를.


키우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저절로 잘 커요.'보다는

'세심하게 잘 살펴봐줘야 해요.' 하는 식물에 시선이 절로 갔다.

본능적으로 끌렸는지도, 아니면 잘 키워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덜컥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잎이 얇고, 줄기도 가지도 그저 하늘하늘한 식물들에 꽂혀 새 식구로 맞이했다.

소소했던 마음이 어느새 커져갔던 것이다.

톡 건드려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식물이, 물방울을 조금도 머금고 있지 못할 것 같은 이 가녀린 식물이 선택지로 보였던 것 보면 내 솔직한 마음이란 존재하는 법. 그걸 처음엔 숨길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니 이 조차도 마냥 숨기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안타깝게도 죽어나가는 경우가 하나둘 생겼다.


'아, 흙이 중요하구나. 분갈이를 할 때는 흙을 재사용하면 안 되는구나.

과습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이 많아서가 아니구나, 물속에서 산소가 제대로 호흡할 수 있게끔 이를 잘 관리해줘야 한다는 거구나'

새로운 요령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지게 되는 순간들이 잦아졌고, 그러고 나서 정말 제대로 키워보리라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내가 직접 흙의 종류를 골라 분갈이를 해본다든지, 식물에게 좋다는 토분을 엄선해서 고르고 그 와중에도 식물과 가장 예쁘게 어울릴만한 디자인을 고른다든지, 반짝 해가 빛나는 날에는 가장 햇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자리로 식물들의 발이 되어 옮겨준다든지.


그 마음을 자각했던 첫 순간을 떠올린다면

화훼단지에 가서 이것저것 식물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식물을 키우시는 아주머니께 '아유, 식물에 대해 많이 아시네요.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찌나 기분이 좋고 뿌듯하던지. 동시에 식물에 담긴 내 마음을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더랬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껏 함께하게 된 식물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서툴고, 미숙한 내 손길로 먼저 보낸 식물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쭈욱 함께 하고 있는, 기운이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곁을 지켜주는 초록이들도 있고, 새롭게 집에 들어와 적응 중인, 적응 중임에도 아름다움으로 활개를 치고 있는 신입멤버들까지도.


또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갤러리 앱을 켜놓고 있다.

매일같이 보다 보니 자각하지 못했던 식물의 성장을, 관찰일지가 되어버린 내 사진첩 속 사진들로 놓고 비교해 볼 때가 많으니까.

나이가 들면 꽃 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던데 나도 어느샌가 카메라를 켜서 귀여운 내 식물들의 새잎들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바쁘다. 눈치도 빨라서, 이걸 반가워 여길 사람에게만 슬쩍 보여주었는데,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났던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엄마라면 내 이 마음을 알아주겠지? 그러고 나니 문득,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베란다에 나가서 꽃을 키우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구나

'딸, 여기 좀 와서 이것 좀 봐봐. 어쩜 이렇게 귀엽게 새 잎을 피워냈을까?' 하는 말이 생각났음을.

이제야 그 마음이 이 마음이었음을, 같은 마음이었음을 확인하는 나는 개딸인가.(은근히 효녀이고 싶은 개딸인가.)


보고 들은 것이 식물 키우기라 제일 먼저 생각났던 취미 후보 '식물 키우기'

어쩜 그렇게 그것이 내 마음에도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는지, 새삼 신기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시는 엄마를 보니 그것도 꽤나 의미 있는 순간인 것 같고.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식물과 가까워진 나를 보니,

나 자신도 감당 못한다며 절레절레하던 내가 무언가를 키워내고 있는 나를 보니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기도. 어쩌면 30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keyword
이전 01화무질서 속에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