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여행
나를 깊이 만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필사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필사는 내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늘 곁에 있어 준 든든한 동반자이자,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장을 옮겨 적는 것을 넘어, 필사는 독서법이자 명상법으로 자리 잡았다.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적는 그 순간,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나 자신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필사는 좋은 문장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고, 동시에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준다. 실제로 필사 모임을 이끌며 다양한 문장들을 접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많은 문장들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고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선택하는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마치 그 문장들이 내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가는 것처럼 말이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아직 수많은 책을 탐독하거나 명문장을 모두 만나보진 않았지만, 그동안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가장 깊이 빠져든 주제는 바로 '자기 성찰'이다. 필사를 하며 내가 선택한 문장들을 돌아보면 대부분이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그 문장들이 내 마음속에 가장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필사를 통해 만나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나를 돌보는 일'과 '나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속삭여 준다. 여러 곳에서 이 점을 강조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존재도 온전히 인식할 수 없고,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판단하기조차 어려울 테니까.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되는 길잡이가 된다.
물론, 나를 한 번에 완전히 알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를 외면하며 지내왔고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내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에,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거울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나를 방치하며 살아왔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마음속 상처들은 그저 덮어두기만 했고, 그것들을 꺼내볼수록 상처가 더 커질 것만 같아서 애써 외면했다. 스스로 그 상처를 어루만질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은 끝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저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 보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그들이 뭔가 특별한 능력이나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곤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깨닫게 된 것은 자존감이란 결국 자기애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자존감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 단순히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임을 깨닫게 되었다.
마흔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 방법들을 찾아냈고, 그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고 있다. 조금만 더 일찍 나에게 손을 내밀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긴 인생의 여정에서 이제 겨우 출발선에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내 속도를 찾아 천천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은 때였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이 순간에 몰입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빛깔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일 그날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최선을 다해 몰입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