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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가 다가가지 않았을 뿐

by 꿈꾸는 나비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보며, 그 렌즈가 우리의 지각에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정한다. 이 렌즈를 '태도'라고 부르기로 하자.”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검은 고요에 잠긴 새벽.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환했다.

이상하다 싶어 창가 쪽으로 성큼 다가가니

동그란 보름달이 또렷하게 떠 있었다.


며칠째 새벽은 캄캄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달빛이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선명하고도 조용하게.


처음엔 가로등 불빛인가 싶었고

누군가 밤새 불을 켜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냥, 달빛이었다.


멀리서 바라볼 땐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빛이 있을 리 없다고 단정했다.

새벽은 늘 어두운 시간이라 여겨왔기에,

그건 의심할 수 없는 디폴트 값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안에도 빛이 있었다.


어둠뿐이라 생각했던 하늘엔
동그랗게 찬 달이 조용히 세상을 비추고 있었고,
빛이 닿지 않을 것만 같던 길목에는
가로등 불빛,

창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조명들이
생각보다 섬세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새벽은 언제나 혼자 깨어 있는 시간이라 여겨왔는데,
그 순간은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이 고요한 새벽에
나처럼 깨어 있는 빛들이,

조용히 존재를 밝혀주고 있었다.


‘나도 이곳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고,
‘너만 혼자인 게 아니야’라고
말없이 건네는 듯한 그 풍경이
작지만 분명한 위로로 다가왔다.


그 모든 빛은 이미 거기,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저 너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달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여전히
그저 어둡기만 했던 새벽이라 믿으며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가만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눈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내 자리에서만 세상을 판단하고,
멀리서 보이는 것만 믿으며 단정해왔던 건 아닐까.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가까이 다가가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인데.

나는 그저, 익숙한 거리에서만 바라보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헤아릴 마음의 여유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만 더 다가갔더라면

빛이 있다는 걸,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훨씬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조용히 정리하고 있던 찰나,
독서 모임 카톡방을 무심코 열었다.

마지막 대화창에 남겨진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싶을 만큼,
방금 전까지 내가 머물던 생각과

정확히 겹쳐지는 말이었다.


우연히도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문구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바로 그거였다.

내가 어떤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오늘 새벽의 달빛이 그것을 다시 묻게 해 줬고,
누군가 남긴 이 문장은

거기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조용한 새벽, 달빛 아래에서 나는

내 시선을, 내 렌즈의 방향을

다시 조정하고 있었다.


그저 어둡다고만 여겼던 순간에도

빛은 있었다.


다만,

내가 아직 거기까지 다가가지 않았을 뿐이다.


#문장이주는위로 #새벽기록 #달빛에세이 #외로움과위로 #태도에관하여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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