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써야 해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이런 것까지 써도 될까?’
글을 쓸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오는 질문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순간,
그런 것들을 붙들고 글로 옮기는 일이 의미 있을까.
쓸까 말까를 망설이다 결국 넘겨버린 페이지들이 내 노트에도 많다.
하지만 그 마음을 조용히 뒤집어준 문장을 하나 만났다.
이 문장을 필사하면서 괜히 뜨끔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혹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에 괜스레 움츠러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어 보니,
그 문장은 오히려 다정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사소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그 사소함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야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쓴다는 건 무엇을 향한 몸짓이었을지,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순간을 내 안에서만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을 기록하고 또 기록한 건 아닌지, 나는 내 마음을 너무 꽉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했다.
하루 중에도 참 많은 감정이 지나간다.
좋았던 기분도, 스쳤던 슬픔도, 말하지 못한 서운함도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쓴다.
흐릿해지기 전에, 이름 붙여주듯 한 줄 남겨둔다.
그러지 않으면 내 마음도, 내 하루도 나조차 놓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 수업에서 들은 또 하나의 말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상황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일을 그냥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문장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속삭였다.
모두를 납득시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해받지 못할까 봐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것을 누군가 하찮게 여긴다 해도,
그 마음까지 내 글에서 밀어낼 이유는 없다고.
그 말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도 다시 쓸 수 있었다.
좋은 문장을 찾고 싶었다.
이 감정을 가장 정직하게 꺼내줄 단 한 문장.
그래서 책들을 뒤적이고, 마음에 남았던 구절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자꾸만 겹쳤고, 너무 많이 쓰인 듯했고,
결국은 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끝내 나를 붙들었던 문장이 하나 있었다.
흔한 말이라 피하고 싶었다.
너무 많이 인용되어 버린, 익숙한 문장이 되어버렸기에.
하지만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가장 정직하게 말해주는 문장이었다.
나는 매일 무언가를 쓰며,
소리 내지 못한 감정들을 조용히 꺼내어 놓고 있었다.
남들이 지나쳤을 마음 하나,
나만 기억하는 장면 하나를
내 언어로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감정이 사소하든, 흔하든,
그건 분명히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요함을 알아봐 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히 계속 쓸 수 있다.
주 1, 2)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꿈꾸는 나비 연재]
[월] 07:00
답은 없지만, 길은 있으니까. (산책하며 사유하기)
[화] 07:00
엄마의 유산, 그 계승의 기록(공저작업 뒷이야기)
[수] 07:00
엄마의 마음편지(딸에게 쓰는 편지)
[목] 07:00
사색의 한 줄, 삶의 단상 (필사로 이어지는 글쓰기)
[금] 07:00
나를 사랑해, 그래서 공부해 (나[내면] 탐구)
[토] 07:00
뜬금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 (일상 에세이)
[magazine 랜덤발행]
모퉁이에 핀 들꽃처럼 (모퉁이 사람 사는 이야기)
2025 월간 나비 (브런치 성장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