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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서사를 심는 중입니다.

by 꿈꾸는 나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칼 로저스



나는 내 삶에 서사적 장치를 심고 싶다. 그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전까지 나는 그날을 버티는 데만 집중하며 살았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쓰러지고, 눈을 뜨면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마치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서 나는 그저 ‘오늘’을 견디는 사람일 뿐이었다.


너무 평범하고 조용한 삶이었다. 기억에 남을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도 없었다. 집과 직장, 가끔의 친구 만남이 전부인 루틴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은 마치 배경음악도 없는 영화 같다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흐릿한 일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뭘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친구가 “요즘 뭐 해?”라고 물어오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뭘 했더라. 일하고, 밥 먹고, 잠들고... 그게 전부였다. 매일이 복사 붙여 넣기처럼 오늘과 어제, 그저께가 하나로 뭉개져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엔 하루를 짧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글로 적어보니, 평범하게 지나쳤던 순간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마신 커피의 온도, 지하철 사람들의 표정, 편의점에서 나눈 짧은 인사까지. 그 모든 것이 글감이 되며 일상이 조용히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내 삶에도 서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저 흘러가지 않고 쌓이기를 바랐다. 내가 흘린 눈물과 웃음, 혼자 걸었던 길과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들이 언젠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조각이 되기를 바랐다.


그 무렵부터 나는 내 삶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영화 속 장면처럼 문득 들려오는 노래 한 구절이 복선처럼 다가오고, 우연히 스친 사람의 표정이 오래 남으며, 사소한 선택 하나가 다음 장면을 열어주는 그런 감각처럼. 그런 것들이 내 삶에도 스며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내 삶이 이야기로 엮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에 조금씩 키보드 앞에 앉아 일상을 돌아보며 문장을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내 하루도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다가 커다란 실패나 눈에 띄는 반전, 극적인 변화 같은 것들로 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과거의 못난 나는 지우고, 좋은 순간만 골라 담고 싶었던 것이다. 완벽한 주인공이 되어 흠 하나 없는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금방 이야기가 바닥이 낫기에, 원하는 대로 쓸 수 없다는 걸 곧 알게 됐다. 오히려 내가 나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선명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괜히 드라마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혼자 울컥하다가, “괜찮아, 나도 사람이니까” 중얼거렸던 그 순간. 거울을 보며 “못생겼지만 이게 나니까” 웃었던 날. 실수를 하고도 “다음엔 더 잘하자” 다독였던 밤. 그런 평범한 장면들이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못난 나도 나였고, 부족한 나도 나였다. 때로는 비겁하고 이기적이었던 나도, 결국 다 나였다. 그 모든 나를 지나왔기에 지금 나는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진짜 나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인간적이고, 상처가 있기에 더 따뜻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용기내어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 겉으로는 별일 없었던 하루 속에 담긴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꺼내어,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멋진 표현이 아니어도 괜찮다. 진심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내가 겪은 평범한 순간들, 혼자만 알고 있던 미묘한 감정들,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고민들. 그런 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글로 남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칼 로저스의 이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에 깊이 닿았다. 글을 쓰고, 누군가의 반응을 마주하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내가 가장 부끄러워했던 순간, 나만 유별나다고 여겼던 감정, 혼자만의 비밀이라 생각했던 경험들을 용기 내어 적었을 때, 댓글창엔 “나도 그래요”라는 말들이 하나둘 올라온다.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고, 나 혼자가 아니란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말하지 못한 마음, 오래 묵힌 고민, 혼자서만 끙끙 앓았던 감정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내보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의 손을 내민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조금씩 알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이야기를 쓴다.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냥 그런 하루의 이야기들로.


'보고 싶어서요. 고마워요. 힘들었어요. 같이 밥 먹을래요? 지금 어때요? 수고 많았어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말들로,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 감정들로,

내 삶 곳곳에 조용히 서사를 심어 가는 중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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