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 낫다."
— 아잔 브라흐마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존재할 뿐이다."
— 로버트 슐러
세상이 이렇게 버거운데,
과연 촛불 하나로 바뀌는 게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알게 됐다.
내가 오래 붙잡고 있던 불평들은
실은 현실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쓰기는 필사에서 시작되었다.
아잔 브라흐마의 문장을 베껴 쓰다
로버트 슐러의 말이 떠올랐다.
두 문장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여러 책을 동시에 읽을 때도 찾아온다.
비슷한 메시지가 나에게 반복되어 들린다는 건,
아마도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일이란 뜻일 것이다.
내가 쌓아온 불평과 불만,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판단들은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도 선택의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단지 그 선택이 잘 보이지 않았거나,
보이더라도 선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선을 달리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최선을 다했는지,
그 물음 앞에선 늘 후회가 밀려온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포기라고 이름 붙인 순간, 길은 사라진다.
같은 상황인데도
누군가는 촛불을 켜고,
누군가는 주저앉는다.
어둠보다 더 무서운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마음이다.
불평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작은 실천은
내 안의 무력감을 조금씩 덜어낸다.
필사를 통한 사색,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보려는 시도들.
그 모든 과정이
조금씩 나를 바꾸고 있다는 걸 느낀다.
글을 쓰면 묘하게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머릿속 흐릿한 생각이 글자가 되는 순간,
그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
깊은 사유를 함께 곱씹고,
필사한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
그 속에서 또 다른 빛나는 생각이 태어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진짜 ‘촛불이 켜지는 방식’ 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켤 수 있는 촛불은 무엇일까.
답은 멀리 있지 않다.
한 걸음, 한 문장, 혹은 나를 다시 일으키는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다.
어둠은 언제나 있었고,
촛불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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