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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예의 안에서 빛난다

by 꿈꾸는 나비


선을 넘는 게 친밀함이 아닌 것처럼 무례한 게 솔직함은 아니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정작 우리는 이 둘을 자주 헷갈리며 산다.


요즘은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원래 솔직한 사람이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진심이지." 그럴 때마다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그 말속엔 솔직함보다는 자기 확신이 더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말의 방식이나 타이밍, 분위기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때다. 그건 솔직함일까 아니면 배려 없는 발언일까.

진짜 솔직함은 감정을 그대로 내뱉는 게 아니다. 상대가 그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지금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인지, 이 자리가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인지까지 살피는 섬세함이 포함되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언제,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 차이를 읽어내는 감각 그게 바로 사람 사이의 온도다.


친밀함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관계가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고 사생활을 묻고, 농담의 수위를 높인다. 마치 '이제는 뭐든 해도 되는 사이'라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진짜 친밀함은 그 반대편에 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더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말 한마디가 가장 깊은 상처로 남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안다.


선을 넘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례함이다. 그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서서히 금을 낸다.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규칙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매번 그 높낮이를 가늠하며 줄다리기를 한다. 가깝고 싶은 마음과 지켜야 할 거리 사이에서 관계는 늘 흔들린다.


솔직함은 무기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내가 옳다고 믿는 말'을 솔직함이라 착각하고 여과 없이 던져버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경계를 넘고 누군가는 너무 높은 벽을 세운다. 그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찾는 건 안갯속을 걷는 일처럼 어렵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 선을 지키는 일, 그 단순한 예의가 점점 귀해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예민해." "요즘 사람들은 너무 무례해." 두 말이 동시에 들리는 지금이 그렇다.


그래도 믿고 싶은 게 있다.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포장하지 않고 침범을 친밀함으로 착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상대의 리듬을 읽고, 감정을 정직하되 배려 있게 전한다. 가까워지고 싶지만 서두르지 않고, 솔직하고 싶지만 다치게 하지 않으려 고민한다.


결국 아름다운 관계란 선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선을 함께 존중하며 조금씩 조율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고 나의 경계를 표현하며 그 사이에서 안전한 거리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게 진짜 '가까움' 아닐까.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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