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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크기가 달랐을 뿐

잘해주고도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by 꿈꾸는 나비


"나는 잘해주고도 상처받는 적이 많아요.
그래서 알았어요.
마음을 줄 땐, 상대의 그릇도 봐야 한다는 걸요."

— 김혜수


이 문장을 필사 문장으로 만났을 때, 옆구리가 푹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나도 그랬지.'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누군가 똑같은 마음을 겪었다는 게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고마움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간다. 같은 온도의 마음이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봄날의 햇살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한여름의 뙤약볕이 된다.


나는 그 차이를 정말 늦게 배웠다.

아니, 어쩌면 배우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고 마음만 좋으면 통한다고 믿었다. 내가 좋은 의도로 한 말인데 왜 상처받느냐고, 내가 진심으로 아껴서 한 행동인데 왜 부담스러워하느냐고, 속으로 서운해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마음을 내어줬다.


마음을 내어줄 때마다 상처가 따라왔고 그 상처를 덜어 내며 조금씩, 아주 더디게 배워갔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자책하기도 했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원망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천천히 나를 보고 상대를 보니, 우린 다만 그릇의 크기가 달랐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진심은 언제나 옳다고 믿었지만 그 진심이 내 시선에서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마음에는 진실되게 쏟는 방향뿐 아니라 그것을 받아낼 그릇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그릇이 없으면 땅에 스며들어 사라지듯, 아무리 순수한 마음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그저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그 흘러간 마음은 허공에서 증발하는 게 아니라 내게로 되돌아와 상처가 되어 남는다.



마음의 그릇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다. 내가 그 깊이를 완전히 가늠할 수 있을까. 아마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깊고, 때로는 그 자신조차 자기 마음의 바닥을 모른다. 다만 조금씩 알아갈 뿐이다. 깊이를 다 알 순 없어도 그릇에서 흘러넘쳐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투에서, 작은 반응에서, 침묵의 온도에서 그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받는 사람이 있고, 고마움을 빚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 친절을 친절로 받는 사람이 있고, 친절을 약점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내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오래 간직한다. 또 누군가는 그것을 가볍게 흘려보낸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정말로, 그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그릇이 지금 그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 혹은 그만큼의 깊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모른 채 계속해서 마음을 쏟아부었을 때 생긴다. 넘쳐흐르는 물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와 내 발목을 적신다.


이제는 관계 앞에서 잠시 멈춰 본다.

과거의 나는 마음이 생기면 곧장 달려갔다. 좋아하면 바로 표현했고 아끼면 즉시 행동했다. 그것이 솔직함이고 용기라고 믿었다. 망설이지 않는 게 진심을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앞에서 한 박자 숨을 고른다. 이 마음을 건네도 괜찮을까. 이 사람이 내 마음을 다루는 방식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관계는 내가 주는 만큼 돌아올까, 아니면 일방통행일까. 내가 기울인 정성이 이 사람에게 기쁨이 될까, 아니면 짐이 될까.


이런 질문들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나무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멈춤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안다. 나의 따뜻함이 헛되지 않게, 내가 기울인 마음이 부딪혀 깨지지 않게.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선택이다.

내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누구와 나눌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깊이로 다가갈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과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어떤 사람과는 깊은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다. 그것을 구분하는 게 차별이 아니라 지혜라는 걸 배웠다. 마음의 그릇을 보는 일은 타인을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아끼기 위한 일이다. 내가 쉽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진심을 계속 믿어가기 위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진심을 믿는다. 여전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싶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아무 데나 쏟아붓지 않을 뿐이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소중히 여겨줄 사람에게 그리고 나와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나도 지치지 않고 오래 따뜻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 나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계속 좋아할 수 있으니까.


상처받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여전히 무서울 때가 있다. 모든 상처를 피할 수는 없지만 피할 수 있는 상처는 피해도 된다고 지속적으로 내게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비겁한 게 아니라 현명한 것이라고. 나를 지키는 것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필요한 일이라고.


그것이 내가 배운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법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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