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곳이 우물임을 알았을 때

by 꿈꾸는 나비

우물 안에 있다는 걸 늘 뒤늦게 알게 될 때가 있다. 그 안에 있을 땐 그곳이 전부인 줄 안다. 좁은 원형의 하늘이 세상의 전부라 믿고서 축축한 돌벽에 기댄 채 이것이 ‘나의 자리'라 중얼거린다. 그 익숙함이 안전함인 줄 알았고, 한 줄기 빛이 나를 완전히 지켜주는 줄 알았다. 거기서 벗어나면 모든 걸 잃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른 뒤 그곳은 세상이 아니라 단지 내가 잠시 머물렀던 작은 공간이었단 것을 알게 된다. 뒤늦은 깨달음이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안도로 찾아온다.


누군가에게서 밀려날 때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관계에서 조용히 배제되고, 익숙했던 자리가 어느새 나 없이 채워지는 모습을 볼 때,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곤 한다. '왜 나만 이렇게 되는 걸까'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모자라서,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가?


하지만 어쩌면 그건 정해진 순리였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를 떠나라는 우주가 보내는 다정한 신호였을 것이다. 때로는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밀려나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떠남은 종종 더 나은 나로 향하는 초대장이다. 우물 밖으로 나오는 일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두렵다. 발을 내디딜 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두려움 너머에 볼 수 있는 또 다른 하늘이 있다. 드넓고 푸르며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의 하늘이 있다.

소외는 끝이 아니라 다른 길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상실이 아니라 확장이고, 버려짐이 아니라 선택받음이며, 작아짐이 아니라 자유로워짐이다. 우물을 떠난 사람만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느껴지는 좁음은 한계가 아니라 그저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증거일 뿐이다.


그토록 잃을까 두려워했던 그 우물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곳은 단지 우물이었음을.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keyword
이전 25화진심은 예의 안에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