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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무게

by 꿈꾸는 나비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지난주 글쓰기 세미나에서 던져진 발제문이 세미나가 끝난 뒤에도 계속 맴돌았다. 식상할 수 있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면 평생 붙들고 가야 할 질문이다. 며칠 뒤 글쓰기 메이트들과 서평 이야기를 나누며 그 생각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세미나에서 언급된 문장으로 흘러갔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이었다. 작품을 평하는 능력 또한 글쓰기의 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논문이 되기도 하고, 칼럼이 되고, 소설과 에세이와 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 감상평인 서평 역시 글쓰기의 한 형태가 된다.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가 찾고 있는 건 같다. 좋은 글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주제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감각'이다. 요란하지 않지만 읽는 이를 멈춰 세우는 글. 술술 읽히는데 생각은 길게 남는 글. 잔잔한 여운이 물결처럼 퍼지는 글. 그런 글이 오래 기억된다.


좋은 서평도 마찬가지다. 서평은 한 권의 책을 자기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옮기는 일이다.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핵심을 포착하는 힘이 필요하다. 많은 생각을 한 줄로 압축하는 표현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직 그 책을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나도 읽어보고 싶다." 그 한마디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면 이미 훌륭한 서평이다.


좋은 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미시적인 글을 쓴다. 거대한 서사보다 작은 순간에 집중한다. 완결된 이야기보다 감정의 결을 포착한다. 짧은 떨림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감정을 건드리고 싶다. 그래서 내 글은 늘 '그때의 마음'을 기록한다. 시간 속에 묻힌 감정의 파편을 조심스레 꺼내는 마음의 고고학자처럼 말이다.


내가 서평이라고 쓸 수 있는 글도 그렇다. 줄거리 요약보다 한 장면, 한 문장에서 길어 올린 감정이 생생한 글. '이 문장을 나도 밑줄 긋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글.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게 된 이야기가 담긴 글. 나의 서평은 정보가 아니라 '감응'으로 다가간다. 한 사람의 내면을 거쳐 온 언어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도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서평을 쓰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그것이 내 삶의 어느 조각과 닿아 있음을 발견한다. 어떤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안에 나의 어떤 순간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서평은 책에 대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책장을 넘기며 만나는 건 타인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마주하는 건 결국 나다.


좋은 서평은 좋은 글과 닮았다. 마음을 조용히 움직이고 생각을 오래 머물게 한다.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게 내가 닿고 싶은 글쓰기의 자리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파문을 남기는 글. 한 줄이 누군가에게 위로나 용기가 되는 글. 가볍게 읽히지만 묵직하게 남는 글. 나는 오늘도 그 한 줄의 무게를 정성껏 눌러 담아본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 한편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그렇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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