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를 한다는 건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꿈이었다.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작가의 생각과 경험이 따뜻하게 오가는 시간. 웃음도, 침묵도, 공감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런 자리. 그게 내가 상상하던 북토크의 모습이었다.
첫 번째 종이책의 북토크는 조금 달랐다. 그 자리는 주로 공저 기획자의 시간이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옆에서 살짝 채워주는 역할에 머물렀다. 공저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했다. 들러리 같은 기분이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남았다. 그날의 기억은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으로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번 두 번째 북토크 <산책과 문장>에는 조금 다른 바람이 있다. 무수책방이라는 작고 따뜻한 독립서점에서 함께 쓴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이 소수로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자리. 그곳에서는 일방적인 강연이 아닌 서로의 '이야기'가 머리로 전달되는 지식이 아닌 가슴으로 스며드는 '온기'로 오가길 바란다. 이번에는 내가 오래 상상했던 북토크의 본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내고 내 언어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그 자리는 서울에서 열린다. 이제는 어쩐지 그곳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서울은 이제 나에게 기회의 장이다. 나를 작가로 세워주는 곳이다. 내 평균값이 그곳에서 다져지고 세워지는 걸 느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면 서울을 한 번쯤 거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글을 쓰며 결국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서울의 대학을 탐방하던 날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화려하고 거대한 서울의 풍경에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낯선 건물들, 빠르게 걷는 사람들, 어디론가 분주히 움직이는 지하철. 그 모든 게 나와는 먼 세계처럼 느껴졌다. '나는 서울에서 살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서울로 가야 할 일이 하나둘 늘어났다.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을 나눌 기회도, 출판과 강연의 문도 대부분 그곳에 있었으니까. 부산에 산다는 건 나름의 자부심이다. 바다가 있고, 느린 속도가 있고, 내 뿌리가 있는 이곳. 하지만 기회의 무게는 여전히 서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 한때는 바늘도 안 들어갈 만큼 단단했던 고집이 지금은 손으로 빚으면 형태가 달라지는 부드러운 점토처럼 변했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빚어질 수 있다면, 예쁜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이 한 몸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그게 타협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서울로 향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그곳에서 내가 작가로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처음에는 주눅 들게 했던 그 빠른 속도와 거대한 에너지가 이제는 나를 밀어주는 힘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오가는 대화들, 함께 나누는 문장들이 내 평균값을 끌어올린다. 서울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라 내가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기꺼이 향하는 곳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북토크를 하러 올라가기까지 12시간이 남았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서울행이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나를 드러낼 기회를 만들고 내가 오래 그려온 북토크가 되길 기대해 본다. 그 자리에서 나는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서 있으려 한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건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내가 작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과정이다. 서울이라는 기회의 장에서 나는 계속 나를 시험하고, 다듬고, 세워갈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산책과 문장]으로 함께 걸어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참고해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