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자리

우리는 왜 아직 서로에게 머물러 있을까

by 꿈꾸는 나비


어떤 말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마음의 가장자리에 박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두고 “결국 체에 걸러지더라”라고 말하던 누군가의 목소리.


그 말이 품은 함의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세월이라는 거칠고 물리적인 시간 앞에서 관계는 필연적으로 마모되기 마련이며, 삿된 인연은 멀어지고 곁에 둘 사람만 남게 된다는 뜻일 테다. 그럼에도 그 말을 들은 이후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것은 관계를 선별의 구조로 바라보는 그 시선이 나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걸러진다’는 말속에는 비정한 기준이 서 있다. 누군가는 통과하고 누군가는 걸러져야 할 대상이 된다는 전제. 그것은 누군가가 체를 손에 쥐고 흔들며 타인의 무게와 크기를 가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 체를 손에 들어본 적이 없다. 내 곁에 누가 있는지는 내가 누군가를 통과시킨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수많은 선택의 갈래 속에서 기꺼이 나의 곁을 선택해 준 ‘의지’에 가깝다고 믿어 왔다. 내가 상대를 남긴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위해 머물러 준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체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작은 입자일지도 모르겠다. 비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아래로 떨어질까 봐, 내 존재의 무게를 억지로 부풀리며 안간힘을 쓰던 밤들을 떠올리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어디에도 걸러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깎아내고 증명하려 애쓰던 그 불안한 진동 속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누군가의 체 위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일보다 간절한 건, 나의 모자란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고 기꺼이 곁을 지켜주는 온기였다. 결국 나를 살게 한 것은 누군가의 엄격한 선별이 아니라, 나의 초라함마저 껴안고 멈춰 서 준 다정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는다’는 말보다 ‘머문다’는 말을 좋아한다.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고여버린 계산 같고, 머무는 것은 떠날 자유가 있음에도 제자리를 지키는 다정한 결심 같기 때문이다. 진짜 깊은 관계는 “저 사람은 왜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있지?”라는 오만이 아니라, “왜 아직도 나에게 머물러 줄까?”라고 문득 속으로 묻게 되는 겸손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 질문을 품고 있을 때, 굳이 손에 체를 들 이유는 없어진다. 나는 앞으로도 체를 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손을 흔드는 대신, 두 손을 비워 둔 채로 그저 머물고 있는 마음들을 바라보고 싶다. 내 곁의 자리가 누군가를 가두거나 걸러내는 여과기가 아니라 그저 잠시 쉬어 가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자발적인 쉼터이기를 바란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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