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과 좋아요가 필요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by 꿈꾸는 나비

무언가를 계속 보여주지 않으면, 증명하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으면 금세 잊히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화면 속 세상은 늘 더 특별한 것, 더 빠른 것을 요구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할 텐데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며 자꾸만 무언가 덧붙이려 애쓰던 날들이 있었다. 더 유려한 말솜씨를 갖추려 했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반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공들여 다듬고 포장한 메시지들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방 휘발되어 버렸다.


생각을 바꾼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머무는 지점은 대단한 성공 신화나 화려한 미사여구 앞이 아니었다. 어제까진 그저 뻔한 소리처럼 들리던 흔한 명언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을 툭 건드리는 때가 있다. 그땐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말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제야 비로소 나도 그렇다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을 마주한다. 공감은 타인을 감탄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던 감정을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다.



매끄럽게 정리된 정답보다 우리 곁에 오래 남는 것은 오히려 불완전한 것들이었다. 말로 꺼내기 애매해서 혼자 삼켜버린 감정,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중간 지점, 결론 없이 던져진 질문들. 공감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아니다. 각자의 방에 숨겨져 있던 마음을 서로가 함께 발견해 내는 일에 가깝다. 이제 나는 모두를 공감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향한 이야기는 결국 아무에게도 깊게 닿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단 한 사람의 마음에 닿아 그를 돕는 글을 쓰기로 한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오늘 내가 삼켜버린 말, 괜찮은 척 넘겼지만 사실은 남아 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본다. 거창한 주제가 아니어도 좋다. 예쁘게 포장하거나 급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일상의 파편, 그 자체로 충분하다. 내가 나의 아픔이나 고민을 진솔하게 기록할 때 그 글은 누구나 겪을 법한 감정의 대변인이 된다. 나의 솔직한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주고, 홀로 삼키던 감정을 꺼내놓게 돕는 따뜻한 손길이 된다.



공감은 숫자로 오지 않는다. 오직 사람 하나로 시작된다. 속도를 내지 않아도, 방향을 자주 바꾸지 않아도 좋다. 자기 리듬으로 걷듯이 자기 말의 온도로 쓰는 것, 그것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공감의 방식이다.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 앞에서 멈춰 선다. 오늘 내가 툭하고 터놓은 진심 한 줄이 어딘가에서 홀로 마음을 앓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쉼표가 되기를 바란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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