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려왔어요? (feat. 내가 기록하는 파반느)

배우 박정민이 사랑한 원작소설-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꿈꾸는 나비



배우 박정민이 20대 시절 내내 끼고 살았다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몇 번이고 화면을 멈춰 세워야 했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문장들이 많아, 한 문장씩 꾹꾹 눌러 기록하며 보았다. 그렇게 멈춰 서서 기록한 이 조각들이 어쩌면 나의 영혼에 빛을 밝히는 가장 순수한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늘 빠르고 화려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20여 년 전 박민규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이 '못생긴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외모지상주의라는 거대한 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면, 영화로 다시 만난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부드럽지만 깊게 두 사람의 사랑과 인간 내면의 면모에 포커스를 맞춘다. 영화 속 남주인공은 세련된 연애 기술 대신, 자신의 비루하고 흔들리는 민낯을 꺼내놓는 쪽을 택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고민이다. 춤을 추고 싶었지만 포기했고, 될 대로 돼라 싶었는데 더 혼란스럽다." 이 투박한 고백에 여주인공은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위로로 화답한다. "말에서 잠시 내렸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쉬려는 게 아니라, 걸음이 느려 따라오지 못하는 영혼들을 기다려주는 거라고."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중에서


세상의 속도에 뒤처진 줄 알았던 방황을 '영혼을 기다려주는 고귀한 시간'으로 승화시켜 준 그녀. 미련이 남으면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말며 나의 속도로 살아가라는 그녀의 말은 남자의 영혼에 환한 불을 밝힌다. 하지만 영화는 이 빛나는 순간만큼이나 이별의 그림자 또한 정직하게 응시한다.


"이별이 왜 슬픈지 알아? 헤어졌다는 고통 때문이 아니야. 잠시나마 네가 그 사람 때문에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야. 그 느낌이 끝나버린 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거라고."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중에서


사랑이 구원인 이유는 우리가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별은 단순히 사람이 떠나가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생동감이 꺼져가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다.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 뭔 줄 알아? 서로의 영혼에 빛을 밝혀주는 거야. 그렇게 빛나는 거야."라고. 결국 이 영화의 심장은 이 글 제목과도 같은 질문, “왜 달려왔어요?”로 수렴된다. 남주인공이 물었을 때 그것은 “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지의 확인이며, 여주인공이 물었을 때 그것은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누군가 전력을 다해 달려와 주었다”는 눈물겨운 구원의 경험이다. 굳이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지 않아도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는 이미 그 답이 “네가 아니면 안 되니까”임을 증명한다.


곱씹으면 뻔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벅차오르고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진리는 시대를 넘어서도 통한다는 걸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소설이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사람들을 울리며 넷플릭스 1위에 오른 현상은 사람들이 여전히 본연의 것, 그 투박한 진심에 흔들리고 이끌린다는 증거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배우 박정민이 왜 그토록 이 소설을 끼고 살았는지 알 것 같다. 영화가 보여준 내면의 빛도 아름다웠지만 외모라는 서글픈 장벽을 더 처절하게 파고들었을 원작의 묵직한 문장들이 이제는 너무나 궁금해진다.


"모든 사랑은 오해지만,

네가 내 고민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나는

내 영혼을 기다리며 나의 속도로 걷기로 했다."


이 여운이 가시기 전에 영화보다 조금 더 아프고 조금 더 깊을 원작 소설을 더 빨리 만나보고 싶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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