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만 됩니다" 학교 밖 청소년 차별과 개선방안
고등학교를 1학기만 다니고 자퇴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말도 안 되는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생물학자가 꿈이어서 중3 때부터 생물올림피아드를 준비했는데 "정규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선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기회를 찾아 문을 두드려도 "재학생만 된다"면서 밀어내는 곳들이 많았다. 지금도 나는 입사지원 서류, 이력서 등에 대학교 이름만 적고 고등학교 관련 사항은 아예 적지 않는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퇴 경험이더라도 인사권을 쥔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발행하는 글은 18살 때 탈학교 청소년 차별을 알리려고 써낸 글이다. 이 글을 쓴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탈학교 청소년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더는 탈학교 청소년이 아니게 되었지만, 내가 당했던 것 같은 차별을 뿌리뽑기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탈학교 청소년이라면, 만나서 반갑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자퇴는 흉이 아니다. 지금 속한 조직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일찍 떠나는 것도 능력이다. 학교 안 청소년으로 자란 사람들보다 훨씬 일찍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간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교 밖 청소년에게 매달 20만원씩 지원하는 ‘교육기본수당’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밖 청소년이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금전적인 지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학교 밖 청소년을 향한 편견과 차별이 깊게 깔려 있다. 참가자격을 재학생으로 제한해서 학교 밖 청소년은 참가할 수 없는 대회나 학교 밖 청소년을 배제하는 학생 할인 같은 경우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5년에 인천시가 주최한 대한민국 독서대상 백일장이 중등부 대상 수상자의 수상을 취소했다. 수상자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상 수상을 통보받았던 학생이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는 것이 드러나자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으로 규정되어 있는 참가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면서 수상을 취소한 것이다. 모든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도리어 학교 밖 청소년을 차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제과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인 생물올림피아드와 뇌과학올림피아드는 참가 대상을 고등학교 재학생으로 한정지어 놓았다.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이 올림피아드에 도전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천문올림피아드는 재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서류 전형에서 학교 추천을 요구하고 있어서 학교 밖 청소년의 지원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영화관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에서 학생 할인 행사를 할 때도 학교 밖 청소년은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인 요금을 내게 만들기도 한다.
청소년기본법 제 5조 2항은 “청소년은 인종, 종교, 성별, 나이, 학력, 신체조건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 대한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비행 청소년일 확률이 높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편의점 물품 재고가 몇 개 없어지자 편의점 직원이 학교 밖 청소년인 아르바이트생을 도둑으로 몰아 폭언을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같은 시설이나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같이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제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이나 제도들은 사실상 학교 밖 청소년만 이용하기 때문에 그들끼리만 모이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학교 밖 청소년끼리만 모여서 교육받는 것보다는 더 많은 청소년이 참가하는 대회나 공모전, 행사 등에 참여하는 것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학교 밖 청소년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과도 교류할 수 있게끔 대회나 행사 등의 문호를 청소년 전체에게 개방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학교 밖 청소년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홈스쿨링 제도도 도입되어 있지 않다. 검정고시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검정고시 시험의 난이도와 다루는 과목만으로는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각종 학교 밖 청소년 프로그램도 직업훈련이나 검정고시 지원에 집중되어 있어서 체계적인 학습을 지원하기에는 부족하다. 학교 밖 청소년도 학교 교육과정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교육, 진로지도, 대외활동을 통합적으로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현재는 다수의 기관이 많은 프로그램을 산발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학교 밖 청소년 스스로 체계적인 학습을 해 나가기 어려운 구조다.
학교 밖 청소년이 스스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자 하더라도 참가할 수 없는 활동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대외활동에서 참가 자격을 ‘학생’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은 주최 측에 일일이 전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학교 밖 청소년도 참가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가를 거절당하면 청소년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의 근간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이질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학교 밖 청소년이 청소년에게 필요한 교육과 사회활동을 경험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테두리로 청소년을 구별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