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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

by 은은한

크리스마스.

일 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자,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다. 나는 무교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때를 가장 좋아한다. 몽글몽글하고, 아기자기하고, 반짝반짝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참 좋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항상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셋인 지금도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던 작은 동심이 아직 마음 한편에 남겨져있다. 어디를 가도 들리던 캐롤과 거리의 화려한 불빛들, 포근한 외투를 입고 서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시골에 살고 있어 그 정도의 화려함은 없지만 함께 어울려 하는 많은 행사들이 있어 크리스마스 시즌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화려한 차량들

11월 말에 하는 크리스마스퍼레이드는 가장 큰 이벤트이다.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싶은 업체나 개인들이 차를 꾸며 행진한다. 동네 웬만한 업체들은 모두 참여하고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들도 참여한다. 구경하고 있으면 캔디나 작은 선물들을 계속 나눠주기 때문에 할로윈 못지않게 많은 간식들을 받을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 혼자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다니기 힘들어 퍼레이드 정도만 구경하고 말았는데 올해에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큰아이 덕에 이런저런 행사를 많이 다니게 됐다. 큰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서는 거의 모든 악기를 가르치시는 음악선생님이셔서 레슨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동네 행사장이나 양로원, 교회 등에서 발표회를 개최하셨다. 총 7번의 발표회에 참여할 수 있는데 그중 최소 3번 이상을 참여하게 하셨다. 처음 해보는 아이 발표회에 내가 더 긴장 돼서 안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7번 모두 참여하고 싶어 하는 큰아이를 보며 반성했다.


'그래, 큰아이가 자신감도 키우고 실력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야.'


마음을 다잡고 스케줄을 정했다. 7번 모두 참여하는 것은 힘들었고, 시간이 가능한 날짜로 4번(시민회관, 크래프트페어, 햄버거가게, 양로원) 참여하기로 했다. 다행히 캐주얼하게 진행되는 것이라 의상에 신경 쓸 것도 없었고, 다들 배운 것만큼만 보여주면 되었기에 연주가 서툴고, 틀리고, 오래 걸려도 문제가 없었다. 첫날에는 긴장했던 큰아이도 두 번째부터는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잘 해내었다. 나였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손이 떨려 엉망진창으로 망쳐버렸을 텐데 참 기특했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쉴 새 없이 쌓여있는 12월에 바이올린 발표회까지 스케줄에 넣으니 달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지만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하는 윈터 콘서트 (학예회)도 가고, 큰아이 반에서 하는 연극 발표회도 가고, 둘째 아이스하키 경기도 가고... 휴... 행사가 너무나 많은 12월이었지만 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바쁜 날은 다 지나고 이제 겨울방학도 했겠다, 여유롭게 크리스마스 시즌을 만끽 중이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10월 31일 할로윈이 끝나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하지만 11월 11일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날인 Remembrance Day가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라이트는 켜지 않고 기다렸다가 현충일이 지나고 나서 불을 밝힌다. 예전에는 11월 초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의 불을 켜는 집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현충일 전에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을 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았다. 다들 동의하는 바였고 나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도 현충일이 지나고 나서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꺼내놓았다. 아이들 물건이 온 집안에 가득이라 딱히 장식품 놓을 곳도 없지만 설레는 마음을 담아 이것저것 열심히 꾸며봤다.


현관문에 리스를 달아놓는 것으로 장식을 시작했다. 8년 전 홈디포에서 시즌마감 세일로 80%나 할인된 가격에 샀던 것인데 오너먼트를 추가하거나 리본 등을 추가하면서 매년 잘 쓰고 있다.


집 밖 난간에 설치돼 있는 고드름모양 전구에도 불을 켰다. 4년 전 이사 온 첫겨울에 설치해 놓은 것인데 단 한 번도 철거하지 않고 겨울에만 불을 켜며 올해까지 잘 쓰고 있다. 주인이 게으름뱅이라 고생이 많았다. 뜨거운 여름 태양과 모진바람에 많이 삭고, 낡아 고장 난 부분이 많다. 올해까지만 쓰고 내년 봄에는 철거를 해야겠다.


다음으로는 크리스마스 장식의 하이라이트, 트리 꾸미기를 위해 지하실에서 거대한 상자를 꺼내왔다. 5단으로 되어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다소곳하게 넣어져 있어 편하게 조립할 수 있었다. 정리 잘해놓은 작년의 나 칭찬해~

트리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장식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항상 투머치였다. 세 아이들이 경쟁하듯 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매달아 버리니 그럴 수밖에... 올해 크리스마스트리는 평소와 다르게 심플하게 꾸며보고 싶어서 계획을 세웠다. 돈들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꾸밀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솔방울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놀이터에서, 뒷산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솔방울을 주워왔다. 솔방울 주우며 신나게 놀다 보면 순식간에 봉투하나가 가득 찬다. 솔방울 사이사이에 거미들이 많이 숨어 있어서 다 털어낸 후 집에 와서 뜨거운 물로 씻어냈다.


물에 씻은 솔방울은 이렇게 바짝 오그라 들기 때문에 며칠 동안 말려 다시 활짝 벌어지게 해야 한다. 신혼 초에는 이걸 자연 가습기라고 해서 사용했었는데 효과는 미약했지만 예쁘고 편해서 좋아했었다.

며칠 바짝 말려 다시 활짝 핀 솔방울들을 하얀색으로 칠해줬다. 락카로 뿌리려고 했는데 밖에 나가기가 춥고, 귀찮아서 물감으로 쓱쓱 칠했다. 난 왜 이리 게으를까요..

집에 굴러다니던 끈으로 리본 만들어 장식해 주고 실을 연결해 트리에 걸어주었다.

하얀색 오너먼트도 몇 개 걸어주고 심플하게 마무리했다. 꼭대기에 나뭇가지를 펼쳐야 하는데 의자 위에 올라가 봐도 손이 닿지 않아 포기했다. 꾸미기가 끝난 후 코드 꽂아 7가지 모드로 켜지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크리스마스 준비는 끝이 난다. 저 크리스마스트리도 시즌마감 빅 세일로 60% 할인된 가격에 샀었다. 저 트리를 사고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모른다. 무엇이든 시즌 후에는 떨이로 엄청나게 싸게 팔기 때문에 내년에 쓸 것들을 미리 사놓으면 좋은데 우리같이 시즌마감 세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늘 경쟁이 치열하다. 도전 첫해 때는 홈디포 온라인에서 결제까지 다 했었는데 순위에 밀려 취소가 됐고, 그다음 해에 다시 도전해서 성공했다. 저 트리를 사기 전에는 산에서 직접 나무를 잘라왔었는데 한번 해본 후 가짜트리를 더 원하게 됐다.

목재회사에서 나무를 운반하기위해 낸 도로들이 곳곳에 있어 깊은 산속까지 어렵지 않게 갈수 있다.

크리스마스용 나무를 자르러 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주변이 온통 나무라 그냥 잘라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긴 하지만 시청 사이트에서 신고서 같은 것을 작성해야 한다. 마트에서도 진짜 나무를 팔고 있기 때문에 쉽게 구입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으로 나무를 직접 잘라왔다. 그런데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어서 막내는 기억도 못한다는 슬픈 사실과 생각보다 맘에 쏙 드는 나무 찾기가 어려워 트럭 타고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아이들이 멀미를 해서 신랑과 나까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또르르....

아이들에게 마음껏 꾸미게 하니 세상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됐었다.

나무를 잘라 온 후에는 금세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화분같이 생긴 받침대에 물을 받아 꽂아놓는다. 큰 나무는 무겁기 때문에 작은 것을 잘라왔는데 작은 나무는 가지들이 풍성하지 않아 예쁘게 꾸미기가 힘들다. 그리고 잎과 나무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청소를 자주 해줘야 한다. 다 쓴 후에는 장식, 전구 등을 다 제거 후 쓰레기매립장까지 가서 버리던지 작게 잘라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니 참 귀찮은 일이었다. 그에 비해 가짜 크리스마스트리는 230cm 정도로 키도 크고 가지도 풍성해서 딱히 뭘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전구도 자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따로 설치, 제거를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후 보관하면 되니 편하다.


11월 중순에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내년 1월 초에 치운다. 트리는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 바로 치우면 안 되고 12일이 지난 후 치우는 것이 전통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12월 말에 치워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아쉬운 나는 조금이라도 길게 놔두고 싶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첫 번째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하루하루 지나는 게 너무나 아쉽다.

대부분 새해가 되면 새 마음 새 뜻으로 한해 계획도 다시 세우고, 대청소도 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나는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 마음 새뜻이 된다. 늘 이맘때 대청소하고, 가구배치도 대대적으로 새로 한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난 후 급격히 힘이 빠지기 때문에 지금을 즐겨야 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처럼 예쁘고 깨끗해진 집안을 보니 너무 좋다. 가구들도 다시 배치하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새집에 이사 온 것처럼 기분 좋고 각오도 새롭게 다지게 됐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였던 만큼 마무리가 잘 되어 모두가 따뜻하고 안전한 연말 보내길 바란다. 그리고 새해에 모두들 복 많이 받으시라고 소리 높여 외쳐본다. 모두에게 새해에 좀 더 좋은 일, 행복한 일, 기쁜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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