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여름 나기
지난주 월요일.
오랜만에 장 보러 갔던 코스트코에서는 아이스크림메이커가 할인 중이었다.
(사실 아이스크림메이커가 아니고 "프로즌 드링크 메이커"인데 아이스크림도 만들 수 있다.)
예전에 이런 소형가전들은 샀다가 애물단지가 돼버린 경우가 많아서 쉽게 구입하지 않는 편인데 여름만 되면 하루에 한 개씩 꼭 하드를 먹고야 마는 아이들 때문에 큰맘 먹고 구입하게 되었다.
직접 만들면 마트에서 파는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아예 먹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오븐에 들어온 듯 뜨거운 여름 날씨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어른인 나도 참을 수 없다. 건강한 아이스크림을 만들겠다는 힘찬 각오와 함께 세일가 $100이면 꽤 괜찮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구입했다.
예전에 야심 차게 사서 두 번 해 먹고 8년 동안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미니빙수기계를 생각한다면 구매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지만 사용과 관리가 쉬워 보이니 이번에는 부지런히 해 먹어 보겠노라 다짐했다.
이 아이스크림 메이커는 Gourmia라는 브랜드인데 한국에서는 한 번도 못 봤던 브랜드. 이곳에서는 주방가전으로 자주 보는 브랜드이다. 재료가 되는 액체를 부어만 주면 된다. 기계는 액체를 차갑게 냉각하며 계속해서 섞어주어 원하는 질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기본 기능이다. 거창하지 않고 심플해서 마음에 들었다. 용량도 2L로 넉넉해서 다섯 식구 한 번씩 맛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얼린 재료를 갈아서 만드는 제품들은 많이 봤는데 이렇게 냉각을 시키는 방식은 처음 봤다. 갈아주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재료는 액체상태여야만 한다는데 냉장고에 있는 우유, 주스를 바로 꺼내 만들면 되니 편할 것 같다. 게다가 통을 미리 차갑게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이 기계로 만들 수 있는 것들로는 소프트아이스크림, 슬러시, 셔벗, 프라페, 셰이크 등이 있다.
크기는 바스켓형 에어프라이기와 비슷한데 많이 무겁다.
부속품들을 씻은 후 잘 말려 다시 조립해서 사용했다. 자동청소기능도 있다는데 처음이니까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었다. 두근두근 뭘 만들어볼까 하다가 모두가 원하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제일 먼저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처음 사용하는 것이라 불안한 마음에 설명서를 몇 번씩 읽어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소프트아이스크림 만들기*
1. 우유+헤비크림+소금+설탕(바닐라익스트랙은 생략)을 모두 섞어준다.
2. 전원을 켠다.
3. 투입구에 섞은 재료를 모두 부어 준다.
4. 원하는 기능의 버튼을 누른다.
5. 삐- 소리가 나면 완성.
(특이사항 : 설탕이 일정비율 들어가지 않으면 설탕이 부족하다는 알림이 뜨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3번까지 잘했는데 갑자기 앞 배출구에서 우유가 쏟아져 나왔다. 세척할 때 열어놓은 레버를 잠그지 않아 부어 넣은 재료가 그대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놀란 큰아이가 두 손으로 받아낼 동안 얼른 레버를 잠갔다. 한 컵정도가 손실되었다. 재료가 모자라니 그냥 우유를 추가로 부었다. 앞쪽 투명창에 MAX표시선이 있는데 그 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 그런 다음 소프트아이스크림 버튼을 누르고 30분쯤 기다렸다.
힘차게 작동하는 아이스크림메이커.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세탁기 소리보다 조금 작은 정도랄까.
레버 옆 네모난 구멍에는 스프링클을 담아놓을 수 있는 통을 꽂는 곳인데 설거지한 것이 아직 마르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다. 옆에 아이스크림콘도 꽂아놓을 수 있고, 스프링클통 아래쪽에는 전용컵을 놓아 토핑용 초콜릿 등을 뜨겁게 녹일 수도 있다.
우렁찬 삐~ 소리가 나면서 완성됐음을 알려준다. 삐 소리 후에도 기계는 계속 돌아간다. 전원을 끄지 않는다면 3시간 동안 내용물을 차갑게 유지를 해준다고 한다.
완성되자마자 줄을 선 아이들에게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주고, 나도 하나 먹어보았다.
재료를 비율대로 하지 않고 우유를 마음대로 더 넣었더니 사각사각한 질감의 시원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되었다. 헤비크림이 적게 들어가서 그런지 쫀득하고 부드러운 질감은 아니지만 느끼하지 않고, 훨씬 깔끔한 맛이라 더 좋았다. 아이들이 두 번씩 먹고 나도 두 번 먹었는데도 남아서 싹싹 긁어서 통에 담아 냉동고에 보관했다. 사진정도의 양으로 한다면 10개에서 12개 정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다음날에는 오렌지 주스로 슬러시를 만들었다.
오렌지 주스 3컵을 넣으라는데 어떤 사이즈의 컵인지도 모르겠고 전날 소프트 아이스크림 만들고 난 후 자신감이 치솟아서 그냥 냉장고에서 꺼낸 오렌지 주스를 병째로 부어 넣었다. 앞에 표시된 MAX만 넘기지 않으면 되는 것 같다. 슬러시버튼을 눌러주고 똑같이 30분 정도 기다려 준다. 완성된 후 맛을 보니 예전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얼려서 팔던 주스맛이 났다. 질감도 파는 슬러시와 똑같아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사용한 주스가 설탕 없는 신맛이 강한 주스라 그런지 둘째와 셋째가 조금 먹더니 포기한다. 첫째와 나는 신나서 다 먹고 설사로 마무리....
기능별 버튼이 있어 기본 질감으로 만들어주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질감을 조절할 수도 있다.
올여름만 잘 사용해도 100달러가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설거지도 편하고, 만들기도 편해서 계속해 먹을 것 같다. 주말에는 신랑을 위해 커피프라페를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