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가다
식당일 시작한 후 일하랴 애들 돌보랴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잠도 너무 부족하고, 내 밥 차리기 귀찮아 안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영양도 부족한 거 같다. 거기에 이번 겨울방학 때는 아이들이 아파 간호하기 위해 밤잠 못 자고 3시간마다 일어나기를 일주일. 몸이 견디지 못하고 탈이 나버렸다. 정말 피곤하다.
2025년 마지막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 혹시 방광염 아닌가? 아는 분이 방광염이셨는데 설명해 주신 증상과 비슷해 느낌으로 방광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쳇 GPT에 증상 얘기하니 병원 가서 항생제를 처방받아야 한다고 한다. 물을 많이 마시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단다. 하루에 물을 세잔도 안 마셨었는데 그래서 그랬나 보다 덜컥 겁이 나서 열심히 마셨는데 미련 맞게 너무 많이 마셔버렸다. 화장실 갈 때마다 고통스럽다. 오후가 되니 증상은 좀 더 심해졌고, 열이 나더니 갑자기 손이 굳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손이 뻣뻣하게 굳어 굽혀지지 않는 것은 예전부터 입덧이나 장염 등으로 토를 했을 때 늘 있던 증상이었다. 구토나 수분 과다 섭취 시 나트륨 부족으로 생기는 증상이란다. 큰아이가 전해질스틱 하나를 물에 타줘서 마시니 손이 조금 풀어졌다. 막내는 누워있는 내게 이불을 덮어준다. 둘째는 게임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부탁하는 건 다 들어준다. 엄마 아프다고 세 아이가 조금씩 힘을 보태니 고사리 손이라도 도움이 많이 됐다.
신랑이 퇴근하면 아이들 맡기고 응급실 가려고 했는데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신랑이 데려다줘야 할 것 같았다. 시부모님께서 오셔서 아이들 봐주시고 신랑과 함께 응급실에 갔다. 다행히 대기실에 아무도 없어서 접수한 후 바로 진료실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동네는 접수할 때 간호사가 혈압, 체온을 잰 후 증상까지 체크하기 때문에 진료실 들어가서 바로 소변검사를 할 수 있었다. (예전에 살던 큰 도시에서는 접수-대기-간호사 만나 혈압, 체온 측정 후 증상 상담-대기-진료실입장-대기-의사만남의 단계였는데 작은 도시라 그런지 단계가 훨씬 단순화되어 있다.) 소변검사 결과가 나오면 의사가 올 것이다. 이렇게 응급실에 사람 없는 건 처음 본다. 옆방에서는 술취하 신 아저씨가 계속 간호사를 부르고 계신다. 올해의 마지막밤을 응급실에서 보내게 되다니 좀 슬프지만 새해 액땜 미리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신랑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기다리다 보니 의사가 소변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왔다. 급성 방광염이란다. 등도 눌러보고 배도 눌러보고 하다가 방광염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바로 먹을 항생제와 처방전을 줄 테니 바로 한 알 먹고 내일 약국에 가서 처방전으로 약을 사라고 했다. 내일은 새해라 약국이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더니 하루치 약을 더 주었다.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더니 걱정하고 있던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시부모님께도 결과 말씀드리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시부모님께서 집으로 가시 고나니 11시 반이다. 빈속에 약 먹으면 안 된다길래 간단히 깡통 수프를 하나 따서 데워 먹은 후 받아온 항생제를 먹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재우려고 방으로 올라갔는데 11시 53분. 7분만 있으면 새해가 된다. 다시 시끌벅적 아이들을 데리고 거실로 내려갔다. TV에 카운트다운 영상을 틀어놓고 온 가족이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창밖 먼 곳에서 누군가 폭죽을 터뜨렸다. 아이들과 옹기종기 창문에 모여 폭죽을 구경했다.
시외곽에서 개인이 터뜨리는 폭죽이다. 예전에는 시민을 위한 폭죽을 시에서 준비해 터트려주었는데 예산문제, 민원문제로 더 이상 새해맞이 불꽃놀이는 없다. 여러모로 찬성하는 바이다. 폭죽 구경이 끝난 후 다시 아이들과 우르르 위층으로 올라가 잘 준비를 했다. 폰을 봤더니 메시지가 와있다. 예전에 함께 얼음낚시 갔던 친하게 지내는 가족인데 그 집 엄마 Gina의 문자였다.
"내일 오후에 썰매 타러 갈 건데 같이 가자"
고맙게도 새해를 맞아 함께 썰매 타고 핫도그도 구워 먹자고 제안을 해주었다.
"우리도 너희와 함께 가고 싶지만 내가 조금 전에 응급실을 다녀와서 내일은 쉬어야 할 것 같다"라고 답을 보냈다. 썰매 타러 가면 아이들이 참 좋아했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새해 첫날에는 아이들 한복 곱게 입혀서 시부모님, 형님댁에 새배드리러 갔다. 오랜만에 함께 모여 떡국도 먹고, 이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다음날 썰매 타러 가자고 했던 Gina가 집에 잠깐 들르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11시 넘어서까지 잠옷차림으로 뒹굴대고 있었던 터라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현관 앞만 대충 치우고 기다렸다. 부부가 함께 왔는데 내가 아프다는 소리에 직접 끓인 수프와 예쁜 꽃다발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두 부부가 돌아간 후 수프를 먹었다. TV에서보던 외국식(?) 수프맛이다. 버터로 맛을 내고, 베이컨과 감자, 케일을 넣어 끓인 부드러운 크림수프이다. 바삭하게 구운 빵과 잘 어울렸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직접 가져다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동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며칠 뒤 깨끗이 씻은 냄비 안에 쿠키와 레스토랑 기프트카드를 넣어 돌려주고 왔다.
크리스마스 전주에 시작해서 약 2주 정도의 겨울방학을 보내고 개학한 지도 2주일이 지났다. 아이들 방과 후 활동이 조금 더 추가가 되어서 더 바빠졌지만 집에 있으면 게임이나 동영상을 보게 되는지라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하나라도 더 배우러 다니는 게 낫다. 나는 게으른 엄마이기 때문에 방과 후 활동이라도 알차게 등록해서 빠지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방과 후 활동 중에 공부 관련된 것이 한 개라도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모조리 예체능 쪽이라 좀 아쉽다. 학교에서만 공부하고 집에서는 학습지 한두 장 푸는 게 다인지라 공부가 많이 부족한데 나도 아이들 가르칠 실력도 안되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있는 활동이라도 열심히 다니며 체력이라도 키워주자 싶다.
》》 첫째- 치어리딩 주 1회, 바이올린 주 1회, 스케이팅 주 2회, 배구 주 1회
》》 둘째- 파워스케이팅 주 1회, 아이스하키연습 주 2회. 아이스하키 경기
》》 셋째-짐네스틱 주 1회, 스케이팅 주 1회
이렇게 하고 있다. 각자 하는 것을 따져보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셋이다 보니 엄마는 스케줄 맞추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엄마 파이팅.
이번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다. 재작년만 해도 영하 34도 정도까지 내려갔었고, 영상인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번겨울은 영하 20도까지도 잘 안 내려간다. 영상 10도 이상인 날도 여러 날이어서 정원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눈 같은 눈도 크리스마스 다되어서야 내렸고, 비도 자주 내린다. 지난달 초에 밴쿠버 쪽은 홍수가 났고 우리 동네도 하천 수위가 많이 올라가서 다들 주시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이렇게까지 직접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일 년 만에 놀랍도록 변해버린 날씨가 어색하여 걱정이 많이 된다. 지구도 파이팅.
새해도 별일 없이 무탈하기를, 안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