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박스 Sep 27. 2023

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0 : 작은 종말

 부러진 바늘이 잘도 호를 그리네.

초조하게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음이 불안한 나머지 어디에라도 시선을 집중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이 불안감으로부터 나의 주의를 돌리지 않고서는 달리 이 시간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런 나의 간절한 바람 따위는 한낱 백일몽에 불과하다는듯이 시계조차 그늘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심란한 마음으로 이마에 흐른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벅벅 닦으면서 방 안의 TV를 켜보았다.

" 구름의 성장이 멎었습니다. 아직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시민 여러분은 재난 방송을 계속 청취하시며 정부의 지시를 대기하여 주시기 바ㄹ..."

다행히 TV 신호의 송수신은 아직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 했다. 구름보다 인공 위성이 밑에 있다는 건 그게 추락중일 지도 모른다는 뜻이니 이걸 좋아해야 할 지 식은 땀을 흘려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당장의 편의에나마 안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부턴가 하늘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과학자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성층권 위를 점점 둘러 싸고 있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것을 뭐라 칭할 길이 없으니 우리는 구름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원래 사람은 살아가면서 성층권 위로 갈 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점점 짙어지자, 우리의 안일한 생각은 보란듯이 무너지고 말았다.

비행기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정확히는 경비행기나 헬리콥터 정도는 다닐 수 있지만, 우리가 타던 거대한 비행기는 기본적으로 고도 10km 이상의 성층권을 날던 물건이었다. 그걸 타고 이동할 수 없다는건 간단히 말해 이제 바다를 통하지 않고는 외국을 오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는 해외로 출국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했고, 더 이상 화물기가 한번에 많은 물건을 나를 수 없게 되자 물가가 조금 올랐다.

그것이 더욱 짙어지자 이번에는 밤낮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해와 달이 더 이상 순서대로 뜨고 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들은 움직이고 있겠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언제나 같은 빛깔이었다. 이제는 시계를 보지 않으면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시계를 반드시 항상 휴대해야겠다. 그것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휴대전화를 항상 휴대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하늘이 좀 어둡다고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시야는 아직 남아있었다. 그보다 어둡지도 않고, 더 이상 빛을 받을 수도 없는, 정말이지 뭐라 말하기 애매한 그럼 묘한 어둠이었다.

구름의 성장이 태동하던 날부터 그것이 겨우 멎은 지금 이 순간까지, 이 모든 것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 일들이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고, 과학자들은 하늘이 좀 어두워진다 해서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공황이 사회를 감돌았다. 사람들은 지금껏 지구는 여지껏 그래왔듯이 평화롭거나, 매체에서 묘사되는 장엄한 사건에 의해 일어나는 지구 멸망이라는 두 가지 결말만을 생각했다. 이런 지극히 시시해보이는 불편이 그렇게 엄청난 불편감으로 다가오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미디어 탓인지, 인간의 본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 멸망의 생존자같은 멋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저 구름이 만든 그늘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표면에 마치 습자지에 물기가 스미듯이 야금야금 찾아왔을 뿐이다. 그 누구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은 불편해졌다. 지구는 망하지 않았으므로 그냥 모두가 이 어둑한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그것은 지금껏 아무도 예상해보지 않은 형태의 재난이었다. 희생자도 영웅도 없는 이 상황을 과연 재난이라고 불러도 되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재난처럼 느껴졌다. 달리 대체할 표현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이 상황을 재난이라 칭했다.

나의 생각이 맞다면 저 위성 신호는 위성이 망가질 때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치면 유통기한이 다 될 때까지는 먹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 전에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뭔가 하고 싶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기이하게도 머릿속은 멍하니 늘어져갈 뿐이었다. 어쩌면 진짜 인류의 위기는 나같이 멍청한 사람의 비율이 늘었다는게 아닐까. 어느 쪽이든지간에 지구가 망할 일은 없었고, 우리가 예상하던 장엄하고 멋진 재난도 아니었다.

휴대전화의 통신은 통신사 서버가 터져버리기라도 한건지 일단은 사용할 수 없었다. 인터넷도 불가능했다. 보낼 수 있는건 팩스 정도인 듯 했다.

나는 위성 신호를 활용해볼 생각을 곧 그만두었다. 신호가 존재한들 전자기기가 먹통이라면 전부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릴 만큼의 인내심도 없었다. 그래,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버린 전파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여유롭게 종이에 글을 남기는 것이 어떨까. 글은 고루한 매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읽고, 네가 읽고 있으니 그거면 충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