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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박스 Sep 29. 2023

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 : 휘림의 시야

 내가 잠에서 깬 시각은 눈을 뜨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새벽 두 시였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직 한창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이었다.
 다시 잠에 들어도 상관없는 노릇이었을건데, 아니야, 어서 다시 잠에 들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의 정신은 또렷해지고 말았다. 마침내 정신이 들자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언제나 잠에 들고나면 일순간에 아침이 찾아오는 것만 같은데, 왜 지금 이 밤의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잠에서 깨고 만 것일까? 내가 태어난 이래로 지금껏 수천번을 자고 일어났을 터인데, 이런 시간에 잠에서 깨어난 것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직 깜깜했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은 가족들도 모두 잠든 듯 하다. 다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아니면 너무 푸욱 잠들어버려서 잠든 시간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한채 지금쯤 아침이 되어 일어나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만 두고 다들 일순간 아침으로 넘어가버린건 아닐까. 우리는 결국 지금 같은 장소에 있을지언정, 다른 시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모두들 내가 없는 아침으로 가버린 거라면, 지금쯤 다들 무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때 아닌 시간에 잠에서 깨었다는 이 첫 경험 속에서 이런 실없는 공상에 잠겼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빨리 주의를 다른 곳으로 환기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만다. 아침에 같이 일어난 사람들이 보낼 미래는 어떤 것일까. 시간은 같은 그렇게 시간을 보낸 이들끼리 공동 소유하는 자산같은게 아닐까. 내가 보지 못한 그 아침이 궁금하다면 나는 어서 생각을 그만두고 잠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불안감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시간선의 격차도 벌어지고 만다. 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나 벌어지고 나면 나는 너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곧잘 하는 까닭에 나는 잠이 일종의 시간여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깨어있는 사람과 잠든 사람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움직여서, 너무 멀지는 않지만 꼭 분명하게 다른 시간선에 서는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 하였는가는 알 수 없다. 그저 나의 삶이 시작할 그 무렵부터 나는 어쩐지 남들보다 늘 잠에 드는 시간이 늦었고, 꿈을 자주 꾸는 탓에 아침이 더디게 찾아오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시간은 만인 앞에 공평하게 주어진다는데, 체감은 그렇지가 않다. 아, 나는 정말이지 타고나기를 지나친 공상가구나.
 미처 어둠에 눈이 익어 시야조차 또렷해지기 전에 나는 서둘러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몸은 누워있지만 나는 꼭 타인의 시간을 좇아 달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이십분 여를 뒤척인 끝에 나는 다시 잠에 닿을 수 있었다.
 나는 두번째로 잠에 들었던 시간에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도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의 침대 건너편에 바라다보이는 책상 위로 시곗바늘이 부러진 탁상 시계가 보였다. 저게 망가졌던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책상으로 다가갔다. 분명하게 두 조각으로 부러져있었다. 책상 밑의 서랍을 열어서 손끝으로 칠흑같은 어둠 속을 뒤적여보았다. 마침내 손끝에 닿은 감촉으로 드라이버와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이제, 시계 앞판을 분리해서 바늘 조각을 이어붙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곗바늘은 테이프로 아무리 칭칭 감아보아도 일직선을 이루지 못했다. 부러진 바늘 조각 틈새를 지점으로, 좌측으로 삼십도 정도 꺾인 채 바늘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바라보며 수리를 마무리 지어야했다. 침대 위에 털썩 걸터앉아 창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까와 변함없는 하늘이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통 알 길이 없었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라는 점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다시 누웠다.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었다. 알람을 끄면서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고장난 적이 없었다. 다만 꼭 오분의 늦잠을 잔 시각이었다.
 더 늦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써보았지만, 학교에도 꼭 오분 여를 늦고 말았다.
" 평소에는 늘 제 시간에 왔던 것 같은데 오늘은 늦었구나. 어째서 지각했니?"
 단순한 질문이였지만 내게는 답변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오늘 아침에 제가 늦잠을 자서요. 간밤에 시계가 고장이 나는 꿈을 꾸었어요. 지난 새벽에 잠이 깨어서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져버린거죠. 그 수많은 답변들 너머에 있을 각기 다른 결과들을 상상했다. 어느 시간선으로 가야할까. 나는 이정표가 지나치게 많은 갈림길에 선 미아가 되었다.
"...혹시 대답하기 곤란한 이유니? "
 물밀듯이 흘러드는 생각들 사이로 선생님께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금 촉박함을 느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 죄송해요. 실수로 아침에 늦잠을 잤어요, 다음부터는 늦지 않을게요."
"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터는 늦지 않도록 주의하렴."
  대답을 마치고 가만히 숨을 들이켠다. 등을 빙글 돌려, 나의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교실 창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시계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계가 고장나더라도 시간은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별 수 없이 시간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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