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끔 사회악이라고 생각되는 사건 관계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법적으로는 충분히 구속 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어 오르지만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구속 시킬 수는 없어 안타까운 경우이다.
오랜 교도소 생활로 건강이 안 좋아진 피의자는 출소 후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들렀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피의자는 시비가 붙었고, 피의자는 그 직원을 상대로 "씨발"이라고 했다. 피의자는 일관되게 피해자에게 "씨발"이라는 욕을 한 적이 없고 설령 "씨발"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 판례에 따르면 씨발은 욕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가 제출한 녹음 파일은 피의자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녹음 파일과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피의자에게 물어보니 피의자는 내가 강압 및 유도 수사를 하고 있다며 경찰서장한테 가서 항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피의자들에게 말리면 수사를 마무리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나도 너의 태도에 열 받았고, 서장한테 가서 항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수사는 내가 마무리 할 것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당당하게 서장실에 찾아가서 강압수사 관련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피의자는 다시 내 책상 앞에 앉았다. 경찰은 민주경찰이기 때문에 피의자한테 예의를 갖춰야 하고, 검찰은 강압수사를 해도 되기 때문에 피의자한테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을 하면서.
그리고 나한테 미안했던지 자기가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아는데, 특정 날짜에 방검복만 착용하고 자기랑 같이 어느 항구에 가면 마약 사범들을 잡을 수 있고, 마약 사범을 잡으면 승진하는 것 아니냐며, 승진 생각이 있으면 본인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피의자를 보내고 범죄경력 조회를 해보니 강력범죄 전과가 상당히 많았다. 미리 알고 조사를 했더라면 덜 당황하면서 조사를 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 교도소에서 오래 살아 교도소 물을 많이 먹은 사람들은 수사관을 어떻게 대우하면 되는지 안다고 한다. 경찰은 민원에 취약하기 때문에 민원인으로서 불만을 제기하고, 수사에 이의제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그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말들이 교도소 내에 돈다고 들었다.
피의자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한참이 지났다. 법무사를 사칭하는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되었는데, 피의자의 이름이 너무 익숙했다. "씨발"은 욕이 아니라는 그 피의자였다. 조사 일정을 잡기 위해 피의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너무 반갑게 인사를 했고, 고소장 내용은 사실이 아니니 당장이라도 출석해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피의자는 내가 이전에 본인한테 강압수사를 했다며 너무 무섭다는 이유로 수사관 교체 요청을 하였다. 온갖 강력범죄를 저질러서 수감된 경험이 있던 사람이 내가 무섭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 피의자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수사관으로서 너무 열 받고 억울하지만 이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회악으로 불려야 마땅한 사람들에게도 인권의 있고,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형사소송법의 틀 내에서만 수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수사해서 제대로 된 벌을 받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다른 종류의 범죄를 저질러 나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0이 아니기에 다시 만나면 진짜 묻고 싶다. 내가 무서웠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