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인 피해자는 본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피의자가 피해자의 카드를 훔쳐 마음대로 사용하였다면서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고소장을 제출한 후, 피해자의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에 피해자를 조사하여 피의자를 특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카드 사용기록을 토대로 피의자를 추적하여 결국에는 피의자가 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렵게 고시원 사장님의 협조를 받아 피의자를 경찰서로 데려올 수 있었다. 전과 조회를 해보니 피의자는 폭행과 절도 등의 범죄로 여러 차례 징역을 산 적이 있었으며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여러 차례 주위 사람들과 시비 붙은적이 있었기 때문에 관할 지구대 직원들도 피의자의 신상을 알고 있었다.
피의자의 말투가 약간 어눌한 것 같아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염려했지만 다행히 피의자는 명확히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피의자는 피해자가 카드 사용을 허락했기 때문에 피해자의 카드로 결제를 한 것이라며 피해자의 카드를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피의자를 조사하기 전에 피해자의 카드 사용내역을 토대로 피의자가 피해자의 카드를 갖고 고가의 그릇을 사기도 했고, 노래방에서 술도 마셨던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인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위와 같은 용도로 카드를 사용하라고 허락했다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는데 피의자는 "피해자가 눈 빛으로 허락했다."고 대답하였다.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보통 조서를 작성할 때, 사건관계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토씨 그대로 받아적지 않고 맥락적으로 이해가 되도록 수정을 하면서 작성을 하는데 피해자가 눈 빛으로 카드 사용을 허락했다는 피의자의 말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 최종 판단권자인 검사가 보고 기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보기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그릇을 사라고, 노래방가서 노래부르라고 카드 사용을 허락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피의자가 피해자의 카드를 훔쳐 사용했다고 판단해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하지만 검사는 고소장에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카드를 주면서 물건을 사오라고 한 적이 있다라는 진술이 적혀있고, 현재 피해자가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워 추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하였다.
나는 검사가 적어도 피의자를 한 번은 불러서 최종 처분을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작성한 기록 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검사들은 경찰이 만든 사건기록만 갖고 판단을 한다. 이 사건에서 만약 검사가 피의자를 한 번이라도 불러서 피의자의 진술을 들어봤다면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 수사를 처음부터 한 나로서는 안타까웠다.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 피의자를 상대로 적어도 공소제기는 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았어야 되는 것은 아닌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피해자의 복지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검찰의 처분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를 알려주었지만 피해자의 의사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불복절차를 진행할 수는 없었다.
정말 피해자는 피의자에게 노래방에 가라고,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생계비를 갖고 고가의 그릇을 사라고 눈 빛으로 허락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