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로스쿨에 진학한 경찰 간부들이 56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지구대나 파출소로 전출을 가서 직장 생활과 로스쿨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요일에 상관 없이 주간(07:00~19:00), 야간(19:00~07:00), 비번(07시 퇴근), 휴무 순으로 4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야간, 비번, 휴무 근무 때를 이용하여 로스쿨을 다닐 수는 있는 구조다. 법에서 경찰관이 로스쿨을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고 있고, 경찰관이 법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경찰 조직에서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젊은 경찰대학교 출신 간부들이 로스쿨에 다니는 것에 대해서 큰 반대를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로스쿨은 정말 상상 이상의 학업량을 요구한다. 3년 내에 7법의 이론을 익히고, 객관식 사례형 기록형까지 보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학습량이 있다. 정말 죽도록 해야 간신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학습량이라고 단언한다. 공부만 해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로스쿨 생활을 정상적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이들의 변호사 시험 초시 합격률이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수치가 궁금하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 생활을 병행하는 경찰관들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항상 지쳐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로스쿨 공부가 직장 생활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쪽지시험 날짜와 주간 근무가 겹치면 연가를 써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한 지구대 파출소의 현실을 고려하면 누군가의 예고 없는 휴가는 다른 동료의 업무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지구대 파출소 근무보다 로스쿨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우선인 현실에서 직장 생활에 대한 몰입 수준은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나는 이 직업이 전부인 줄 알고 지구대 파출소에서 주취자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젊은 경찰대학교 출신 간부들은 로스쿨을 다니려고 지구대 파출소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에 경찰관들의 로스쿨 병행은 조직 전체의 사기 측면에서 봐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정말 변호사가 하고 싶다면, 로스쿨을 다니고 싶다면 경찰을 그만두고 다니면 된다(나와 같이 졸업한 한 경찰대학교 졸업생은 입학하자 마자 경찰을 그만두었고, 결국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취직했다). 왜 이들은 직장을 그만두지도 않고 로스쿨을 다니는 것일까? 아마도 경찰은 계급 정년이 있고, 경찰을 그만두고 나면 검찰과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학부 때부터 세금 지원을 받으며 경찰 엘리트로 육성되어온 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나와는 크게 달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경찰을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경찰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더 진지하게 해야되지 않을까? 계급정년 때문에 능력있는 엘리트들이 조직을 떠나게 된다면 계급정년을 없애려고 다른 정부기관을 설득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고, 총경으로 진급하는 자리가 너무 적기 때문에 승진경쟁에서 밀리는 엘리트들이 많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총경 자리를 늘려보려고 조직 내외부에서 노력해야 되는것 아닌가?
굳이 로스쿨에서 배우지 않아도 일하면서 배우는 실무지식과 틈틈히 책을 통해 배우는 이론, 판례를 갖고도 수사관으로서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중간에 로펌에서 불러주겠지?", "퇴직하고 나서도 좋은 로펌에 취직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회사 생활을 하는 간부를 그 누가 좋아하고 진심으로 따를 수 있을까? 그런 엘리트들을 왜 학부 때부터 학비, 품위유지비, 책 값을 주면서 키워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