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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Apr 17. 2021

때로는 배짱이 답이다.

불법 사채업자에게는 더 당당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경제범죄수사팀에 있다보니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었다. 돈 때문에 결혼이 깨지고, 돈 때문에 우정도 깨진다. 남편될 사람이 사업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억 소리하는 돈을 빌려줬는데 갚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연락이 안되기 시작했다며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다며 찾아온 고소인이 있었다. 피의자를 불러 이야기를 나눠보니 피의자는 그 여자한테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고소인을 무고죄로 고소하고 싶다며 그 절차를 물어봤다. 담당 수사관으로서 이처럼 결혼이 물건너 가는 과정을 몇 차례 겪다보니 친구 사이가 돈 때문에 틀어지는 경우는 너무 담담하게 조서를 작성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일은 피하는게 좋다는 생각이다. 특히 돈이 문제되는 경우라면 말이다. 돈 문제는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말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인 것처럼 보이는 말 한마디면 사건이 해결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경찰서 같은 수사기관에 오지 않더라도 법원의 조정을 거친다든가하면 감정을 충분히 덜 상하고도 서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경찰조사를 받는 것에 비하면 훨씬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다. 


 하지만 당사자 간에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돈이 급해서 불법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지만 그 후 상당 부분 갚은 경우가 그렇다. 이자제한법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 빌린 돈을 갚았다면 그 이상의 돈을 달라는 사채업자의 요구에 굴복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더 이상 갚을 돈이 없다, 배 째라는 식으로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가야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20대 초의 임산부는 남편이 급히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남편 대신 사채업자에게 30만 원 정도를 빌렸고, 50만 원 정도를 갚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채업자가 약속했던 이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라면서 돈을 더 갚으라고 끊임없이 전화해서 욕을 하길래 더이상 갚을 돈이 없으니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겁이 나니 신변보호를 해달라며 경찰서를 찾아온 것이었다. 동시에 협박 고소장도 제출하였다. 


 협박 고소장을 제출하기는 하였지만 고소인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구두계약 한만큼 이자를 변제하지는 못했지만 빌린 돈의 두배 가까이를 변제했으니 더이상 협박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간신히 피의자와 전화연결이 되어 돈은 받을 만큼 받았으니 고소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면서 그렇게 한다면 고소인은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의사가 있음을 설명했다. 그러자 피의자는 그럼 더이상 전화하지 않겠다고 나와 고소인에게 확언을 해주었다. 


 채무자는 당연히 채권자에게 약속한 금액만큼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30만 원을 빌렸는데, 이미 50만 원을 갚았고, 50만 원을 더 변제하라는 요구까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아이유가 사채업자에게 몇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면서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으니 경찰, 검찰, 법원에서 보자며 사채업자에게 당당히 맞섰다면 조금은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면 아마도 사채업자 관련 사건이 경찰서에 더욱 많이 접수될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채무를 이행하려고 하였지만 물리적 힘이 없어 심적 고통을 극심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도와줘야 할 의무가 우리 경찰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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