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인재 Jul 10. 2021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여겨질 때

경제적으로 피해자가 손해를 봄이 명백하고 법적으로도 피의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찰이 피해자의 손해 회복을 위한 심부름 센터 직원처럼 되는 경우가 꽤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저작권법 위반 사건이다. 몇 천만 원짜리 프로그램의 경우 그것을 개발했던 회사 입장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판매하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그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회사의 경우 불법으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고 싶어할 것이다. 당연히 경찰은 불법으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사용한 피의자가 저작권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를 한 피해자들과 그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피의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고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들과 합의를 하기 위해서 고소를 한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은 컴퓨터의 IP주소를 토대로 경찰이 추적을 해서 피의자의 연락처를 확보하면 고소대리인들은 피의자에게 전화를 해서 합의금 액수를 알리고 합의하지 않으면 고소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말을 한다. 합의금을 받은 고소대리인은 고소취하장을 접수하는데, 저작권법 위반 사건은 고소가 있어야 수사 및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친고죄이므로 고소취하장을 접수하면 경찰은 사건을 공소권 없음 처리하게 된다. 고소인과 고소대리인이 원하는 합의금을 받을 수 있도록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저작권법 위반 사건을 주로 하는 경찰서 주위에 있는 특정 로펌이 정말 많은 저작권법 위반 사건을 고소해서 한 수사관당 2~3건 씩 사건을 갖고 있었다. 경제팀에 접수된 사건만 거의 4~50건 정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IP를 추적해서 프로그램을 불법 다운로드한 회사들은 서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경기도 외곽 지역의 공장지대에 있어 수사관들이 매번 경기도로 출장을 가야만 했다. 합의금을 받아내려는 용도로 수사를 이용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를 않아서 고소권 남용으로 사건을 각하시켜볼 논리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피의자들의 행동은 법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기에 각하를 시킬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많은 수사관들이 위와 같은 사건의 고소장을 접수 받으면 고소(대리)인을 부르지도 않고, IP 추적을 하고, 피의자를 특정하고, 고소(대리)인에게 연락해서 고소취하장을 접수받아 사건을 종결하였으나 고소권 남용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를 불렀다. 고소장에 적힌 IP주소를 어떻게 획득하였는지, 그 IP 주소가 정확한지, IP 주소가 사용된 장소가 경기도로 나와 사건을 담당해야 하는 관할 경찰서는 경기도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사건을 서울에 접수하는지,  고소인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자들의 IP 주소를 수집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지, IP 주소는 개인정보가 아닌지 등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합의를 하면 고소취하를 할 것인지를 물어보면서 경찰 수사가 합의금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고소대리인은 그런 점은 인식하고 있지만 피해자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냐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변호사와 고소보충조서를 작성하고 난 이후, 해당 로펌은 우리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자기네들이 조사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해본 후 피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다고 한다. 


 돈 받아주는 일 또한 경찰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금전적 피해를 회복시켜주는 일 또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일만큼이나 피해자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 목적이 전혀 없는 단순히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만 하는 고소는 경찰 수사를 본인들의 이익만을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되기에 씁쓸하다. 


     

작가의 이전글 팩트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