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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Sep 12. 2021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힌 조합사건

 돈이 몰리는 곳에는 갈등과 이로 인한 분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각각의 구성원들은 본인의 이익 만을 생각하며 움직이는데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재개발, 재건축을 위한 조합은 분쟁이 발생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조합 관련 사건은 경찰서에 많이 접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합 임원인 고소인은 조합장인 피의자가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도 않고 A 업체와 도로공사 계약을 체결했는데, 만약 B 업체와 도로공사 계약을 체결했다면 3억 원 적게 도로공사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합장의 행위로 인해 조합에 손해가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는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이미 도로공사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고소인의 주장이 맞다면 이미 피의자가 A 업체와 체결한 계약은 무효가 되어 원상회복과 대금 반환 의무가 발생하는 등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알고보니 고소인과 피의자는 재건축 관련해서 서로를 상대로 여러 차례 형사고소를 하고 있는 관계였기 때문에 둘 사이의 감정은 상당히 악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조합이 체결하는 공사계약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합장 혼자서 결정을 내리면 안되고, 조합총회의 결의를 거쳐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조합장은 조합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조합원의 의사를 고려하여 결정을 해야만 한다. 조합장이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등 돈을 빼돌리고 싶은 유인이 충분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의사결정을 추진해서 깨끗하게 사업을 진행하라는 의도이다. 


 피의자는 조합총회의 결의를 거칠 사항이 아니라고 항변하였으나 2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도로공사 계약을 총회의 결의사항이 아니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피의자가 배임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피의자가 고의로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는지 여부이다. 만약 피의자가 고의를 갖고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면 당연히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만 만약 고의 없이, 즉 총회의 결의가 필요한지 몰랐다고 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피의자인 조합장은 도로공사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시행사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도로공사 계약을 체결하기 전, 후 과정을 모두 조합원들에게 즉시 공개했고, 도로공사 발주에 참가 신청을 한 여러 업체 중 A 업체의 실적이 객관적으로 가장 우수했던 점을 근거로 나는 피의자에게 배임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검찰에 송치를 했다. 


 이 사건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내가 처음 처리한 조합 사건이기도 하지만 고소인 변호인과 고성이 오고 갔었기 때문이다. 대질조사 계획을 잡았는데 피의자가 약속을 어겨 고소인과 고소인 변호인에게 다음에 다시 약속을 잡아야 겠다고 말하자 고소인 변호인은 엄청 항의를 하면서 자신은 바쁘니 당장 피의자를 체포해오든지 해서 오늘 대질조사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왜 수사관인 내가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아마 이 변호인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임의수사가 원칙일 뿐만 아니라 임의수사로 진행하고 있는데 영장도 없이 피의자를 체포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도 안 된다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말이다. 또한 내가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렇기에 나도 아주 크게 그럴 수 없다고 소리쳤다. 결국 팀장님이 나서서 중재를 해주었기 때문에 그 변호인이 사과하는 선에서 이벤트는 종료되었다. 


 조합 사건의 경우 돈이 크게 걸려있기 때문에 고소인, 고소인 변호인이 사건에 민감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도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고 수사에 임하고 있다. 수사관의 잘못된 판단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사건 관계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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