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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Dec 29. 2020

고소(취하)의 현실

고소는 수사기관에 피의자의 처벌을 의뢰하는 의사표시이다.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접수하면 피고소인은 피의자로 입건이 된다. 피의자로 입건이 되면 수사기관은 강제수사를 진행할 수 있게된다. 강제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수사기관이 피고소인의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체포 또는 구속까지 할 수 있게된다는 의미이다. 피고소인이 받게되는 인권침해 우려가 상당하기 때문에 고소라는 행위는 매우 신중해야 하고, 수사기관도 입건여부를 까다롭게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돈을 빌려주고 못받아 화가 난 고소인들은 수사기관이 피고소인을 입건해서 본보기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나 역시도 이런 요구를 고소인으로부터 수없이 받아보았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국가가 합법적으로 고용한 깡패가 아니기에 나는 이와 같은 요구를 거절한다. 당사자들끼리 민사적으로 해결할 문제를 수사기관이 나서서 해결하게되면 공포감을 조성하여 인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다름없다. 


입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처벌보다는 문제해결이 우선이기에 피고소인으로부터 돈을 받게되면 대부분의 고소인들은 고소를 취하한다. 형사법적으로보면 고소취하 여부와 상관없이 수사기관은 수사를 계속할 의무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실익이 없기 때문에 사건을 종료하게 된다. 법과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지점에서 수사기관은 현실에 보다 초점을 맞추게 된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매우 낮은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내가 겪고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안이오", "않이오", "녜", "업슴"이라고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있다. 글을 읽지 못하니 내가 작성한 조서를 읽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글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고소인들은 수사관에게 고소취하장 작성을 대신 요구하기도 한다. 피고소인을 입건해서 처벌할 실익도 없기에 이러한 요구를 받은 수사관은 고소취하장을 대신 작성해준다. 그래야만 한다. 어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고소취하장을 작성해서 갖고 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많은 피의자들은 억울해도 수사기관을 상대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변호인을 선임할 돈이 없어 제대로 된 법적 조언도 받지 못한다. 이런 피의자의 인권을 수사기관은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조국 전 장관과 같이 수사기관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오히려 수사기관의 법리적용을 비판하는 피의자들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하겠지만, 진짜 "피의자의 인권보호"라는 단어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알지 못해서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하는 단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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