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사를 하고 나서 2주 동안 지구대 실습을 나갔었다. 마장동 우시장을 관할에 두고 있는 지구대에서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마장동 우시장으로 출동하는 일이 잦았다. 새벽에 우시장에 출동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너무 무서웠다. 우시장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밤에 칼을 든 사람들이 작업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칼을 들고 우시장을 돌아다니는 상인들의 모습, 그리고 컨테이너 안에서 나를 뻔히 쳐다보는 그들의 모습 때문에 등골이 서늘했다.
우시장 골목골목에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 수많은 빌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폭 신고자가 위치를 잘 알려주었음에도 한번에 해당 빌라에 찾아가기 힘들었다. 순찰차 3대가 출동했었기에 경찰관들끼리 의견을 주고 받으며 겨우 겨우 2층 빌라에 찾아갈 수 있었다. 여자분 한분이 속옷만 입고 의자 뒤에 숨어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정폭력 신고를 했고, 너무 무서워하면서 벌벌 떨고 계시는 피해자를 안정시킨 후 지구대로 이동하여 추가 조치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막상 신고하신 분은 경찰서에 동행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있는 집에 다시 들어가도 된다고 계속 우기면서 이제 되었으니 폭행신고를 정식으로 접수하는 것도 완강히 거부하였다. 아마도 피해자는 남편이 경제권을 갖고 있고, 남편이 구속되거나 하면 아이들의 미래도 불안해지니까 정식 신고접수를 거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때 경찰이 할 수 있는 추후조치는 아무것도 없다. 신고자가 보호조치 받는 것을 거부하고 경찰서에 가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강제로 피해자를 경찰서로 데리고 갈 수는 없다. 경찰이 예지력을 갖고 앞으로 벌어질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하면서 일을 할 수는 없다. 아이들 걱정에 남편을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지금 당장 죽을수도 있으니 일단 정식으로 신고접수를 하고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합시다라고 할 수는 없다.
2) 사실혼 관계의 남자친구에게 구타를 당하고, 욕을 먹고 있었던 피해자가 있었다. 심지어 그 피해자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너무 안타까워서 위치추적이 가능한 시계도 주고, 부모님 집에 피해있으라는 조언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주제넘는 발언이기는 하지만 임신을 했음에도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남자친구와는 결혼도 해서는 안될 것 같고, 헤어지는게 좋겠다라는 충고도 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남자친구의 빛을 대신 갚아주는 와중에서도 협박 신고도 몇 차례 더 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그냥 그 남자친구와 같이 살아야 한다며 나에게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시계를 반납했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들이라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다. 내가 뭐라고 그들의 삶을 평가하겠는가?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텐데. 다만 가정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안타까운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경찰력의 한계를 경찰이 아닌 사람들은 잘 이해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 욕받이를 다 현장 경찰관들이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장 경찰관들의 목소리를 좀 들어주고, 그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현장은 위험하다.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건물에 앉아서 수사지휘나 하는 지휘부랑 검찰과는 차원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