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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Sep 08. 2016

여행 매너리즘

청춘여행소, 스물한 번째 이야기


현상 

3주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후배가 돌아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준비한 여행이니 만큼 3주라는 시간은 후배에게 참으로 짧은 기간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보는 내 질문에 예상외 답변이 돌아왔다. 

'로마에 있는 마지막 일주일 정도 동안은 솔직히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고, 피곤하고, 귀찮고, 한국에 너무 돌아오고 싶더라고요.'

다시 못 올 곳이라는 걸 알기에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이미 별 감흥 없이 거기서 거기인듯한 장소들만 옮겨 다니고,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남기는 여행의 막바지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나도 그랬었다.


본질

참 신기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현실이 그렇게 싫어서 작정을 하고 머나먼 길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마저도 다시 현실을 그리워한다. 이렇게 우리는 '여행 매너리즘'에 빠진다. 매너리즘은 새로움에 반응하지 않는 뇌의 상태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 반응의 감수성이 떨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매너리즘은 삶을 정체시키는 권태를 부르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을 TV, 게임, 쇼핑 등의 흥밋거리로 채운다면 반응의 역치만 올려놓는 셈이 되기에 계속해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새로움을 찾아 떠나갈 여행에서조차 우리가 매너리즘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여행을 흥밋거리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감탄하며 설렜던 마음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익숙한 유럽 풍경, 비슷비슷한 도시의 분위기 속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관점

내가 여행 매너리즘을 느꼈던 것은 2년 전, 긴 유럽 여행의 막바지에서였다. 인-아웃이 파리였던 우리의 일정 상 유럽을 돌아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을 참 심드렁하게 보냈다. 우리가 했던 일은 숙소에서 밀린  예능을 보는 일. 어둠 속에 반짝이는 에펠탑을 밖에 두고 예능을 봤던 그때를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모른다. '추워서 나가기가 귀찮다', '에펠탑은 이미 많이 봤지 않느냐',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면 그냥 된다' 등 온갖 합리화를 했던 것으로 보아 나는 지금만큼 성숙한 여행자도 아니었고, 여행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그때 귀찮은 몸을 이끌고 에펠탑을 보러 간다 했던 들, 분명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조예은 여행작가의 말처럼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여행자다운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여행자다운 시선'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멀리 여행하는가, 얼마나 오래 떠나 있는가는 여행자 마인드의 핵심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깊이 있게 인지하는지가 중요하다. 여행의 경계는 주관적이다. 
우리가 충분히 보고 듣고 느꼈다고 단정 지었던 익숙한 길에서도 새로운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여행자다운 시선이 여행의 경계뿐만 아니라 삶이 지평도 확장해줄 것이다. 
- <여자에게 여행이 필요할 때> 중에서

아이디어

 예술가들이 우리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그들은 바라보며 '감탄'한다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풀 한 포기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며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그들만의 생각을 한다는 것. 그런데 사실 여행자도 여행을 하며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는 스쳐 지나갔을 법한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슬퍼하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풍부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노력이란 것이 없던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야 하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 여행 중 무의식 속에 떠올랐던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잡아 크게 확대하거나 더 깊게 파고들어 마주하는 것일 뿐이다. 이 작은 노력은 여행에서의 매너리즘은 물론, 더 풍요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된다. 


"스스로 좋아하고 찾아서 배우려고 하면서 몰두하는 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 여행자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진 본질의 비밀을 끈기 있게 알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사소한 감정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여행에서 내가 느낀 매너리즘을 잘 분석하다 보면 그 안에서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감탄이 없는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맑은 공기에도, 삼삼오오 모여 활기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속에서도 내 안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보이지 못한 새로움이 우리에게 자극을 줄 것이다. 또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며 여행 속 경험한 '몰입'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강한 내적 동기부여가 되어 여행을 이끌어 갈 것이다. 


여행 매너리즘을 느끼지 않는 여행자들은 하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 가이드북에서 정한 여행지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오래 머문 여행지의 숨겨둔 또 다른 매력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나라에 대한 적응을 끝내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야만 볼 수 있는 그 매력들. 그것을 경험한 여행자는 낯선 환경의 진짜 냄새를 제거하는 요즘 여행 산업의 흐름을 거슬러 낯선 환경 속으로 뛰어 들어가 전면적으로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정한 컬처쇼크는 그제야 시작된다.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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