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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r 09. 2016

중요한 것은 '어디'가 아닌 '무엇'

청춘여행소, 네 번째 이야기


현상


몇 년 전 친구와 방문한 대형서점 한쪽에서 대자보 크기의 어마어마한 세계지도를 발견했다. 

단순히 사회과부도에서만 보던 초록, 갈색, 파란색의 지도가 아니었다. 그 지도는 각 나라가 예쁜 색들로 구분되어 있었고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지도 위에 작성하거나 색을 칠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등 표시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그 지도를 만지작 거리며 그곳에 뭔가 적을게 많은 내가 부럽다 했고 그땐 이유도 모른 채 부러움의 대상이 된 그 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지도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 뒤 형형색색의 색연필로 칠해보려 하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러시아를 갔을 때 가본 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 한 군데인데 이거.. 러시아를 다 색칠해야 하나?'

'여긴.. 스탑오버.. 공항만 갔는데..' 

'에이 이왕이면 많이 색칠하는 게 좋지! 뭐 어차피 그 땅을 내 발로 밟기도 했고, 그 나라 냄새를 맡아봤잖아?' 하고 생각하며 패기 있게 색연필로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또다시 멈춰 생각하게 되었다.


'각 여행에서의 경험들이 쉼, 관광, 꿈, 선교 등 모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나에게도 분명 각기 다른 영향을 주었는데 단순히 가 본, 가보지 않은 두 선택에 의해서만 구별되는 건가?'


며칠 뒤 곧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팁을 주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하며 그때의 추억과 경험을 되살려 보고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첩 폴더를 열었고, 순간 며칠 전 지도를 색칠할 때와 같은 아이러니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여행 사진 폴더들


때마침 전화 속 친구가 말했다. "내 친구도 며칠 뒤에 인도 여행 간다더라"



본질


여행을 가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먼저 생각하는 것, "어디로 갈까?" 

주로 비행기 표는 빨리 구할수록, 3개월 즈음이 가장 싸다는 정보의 입각해 여행하고자 하는 특정 나라나 장소를 정하고 해외여행의 경우 인, 아웃에 따라 비행기표를 끊는다. 

그 뒤 가이드북이나 블로그, 주변 지인들의 정보를 얻어 무엇을 할지 세부적인 계획을 세운다.


결국 이러한 순서대로 준비된 우리의 여행은 내가 여행해서 경험하는 것들이 곧 내가 어디를 가는지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여행을 가는 목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장소가 주객전도가 되면서 우리는 여행지와 여행의 이유를
구분하지 못한 채 여행을 해온 것이다


처음 유럽여행을 갔던 그 당시의 나도 막연하게 '아 유럽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지금 돌이켜 그때의 그 생각을 천천히 살펴보면 '주변 사람들이 다녀온 유럽, 그러나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으로의 의미만 가질 뿐 그 여행엔 나만의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나의 '자아 정체성'을 이루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간다는 점에서 '그 낯선 곳이 어디냐'는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내가 '그 낯선 곳을 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은 분명한다. 다른 장소로서의 막연한 여행은 그 장소에 도달하는 순간 그 의미가 사라지기 마련이며,  더 이상 그곳이 낯설지 않게 되면 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 이동하고 싶은 충동이 들 테니까. 그렇게 '더 많은 나라를 보고 경험한다'는 그럴듯한 성취감 속에 우리는 계속해서 유럽의 비슷한 성당들, 빨간 벽돌의 집들, 구별이 잘 가지 않는 강과 다리들만 수두룩 하게 맞닥들이고 있는 것 아닐까? 


관점


"사실 여행 중에 유럽을 들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경비는 둘째 치고, 편견이지만 유럽 여행이라 함은 미술관도 가야 할 것 같고 박물관도 가야 할 것 같고, 사람 냄새 풍기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의심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사람 냄새나는 여행이었기에 그동안 지독하게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들을 누벼왔다."                                                                             안시내,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결국 '어디로 여행'이 아니라 '어떤 여행을 준비하느냐'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어떤 여행'에 대한 확고한 생각. 이러한 내가 기대하고 원하는 바가 있다면 '여행지'를 결정할 때 목적에 맞으면서도 나의 여행의 가치를 가장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이유를 갖고 선택한 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 특히 판단을 요하는 상황에선 내 목적에 맞는 현명한 판단을 도와줄 것이다. 나만의 분명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서 경험하는 그 모든 생각과 우연들이 내가 바라는 그 목적에 맞도록 재해석되어 나의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똑같은 경험을 해도, 같은 장소를 가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볼 때마다 나는 '이름의 위대함'을 느낀다.

이름에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도 하겠지만 때론 우리의 바람을 담기도 한다.

우리의 이름을 부모님이 신경 써서 지어주시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이름은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우리의 표상이며, 의식 하건 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이름을 어딘가에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여행만이 가지는 가치도 그 이름에서 나온다

이것이 내가 제안하고 싶은 '여행 이야기의 제목'이다.


Episode #1

별명이 빵순이인 내가 한동안 베이커리에 눈먼 때가 있었다. 집에 있지도 않은 오븐기 대신 훈제기에 빵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구워가며 집안의 전기요금 폭탄의 요주인물이 될 때쯤이었을까. 시중 빵집의 맨날 비슷한 종류에 식상함을 느끼고 문득 더 많은 빵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빵으로 으뜸인 나라들을 검색하다가 파티쉐로 유명한 양대산맥인 프랑스와 일본을 알게 되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었지만 며칠 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던 일본 빵을 소개하는 장면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며  마치 날 오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경비를 벌어 그렇게 일본으로 떠났다. 목적은 분명했다. "정말 다양한 빵을 먹어보리라." 이때 나에겐 단순히 일본 여행이 아닌 '빵트립'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여행이 재탄생된 순간이었다. 


 

 도쿄에만 머물렀던 짧은 10일의 기간이었지만 3킬로가 쪄올 정도로 많이 먹고, 공부하고, 깨달았던 여행이었다. 모든 끼니를 빵만 먹은 것도 아니었고, 평범한 다른 사람이 다니는 유명한 여행지도 다 구경하고 돌아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의 목적이 분명하니, 다른 음식을 먹을 때에도 새로운 빵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아이템, 아이디어로 보이기 시작했고, 관광지에서도 사람들이 먹는 빵에 시선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Episode #2

여행 가서 정말로 얻고 싶은 것을 토대로 여행 이름과 목적을 만드는 것에 대해 아빠에게 열변을 토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때는 우리 네 가족이 함께 하는 처음이자 어쩌면 딸들이 시집을 가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가족여행을 준비 중이었는데 내 말에 아빠가 꽤나 고민을 해보신 모양이었다. 며칠 뒤 한층 기분이 좋아지신 모습으로 아빠가 말하셨다.

 은진아, 아빠는 보라카이 왜 가는지 아니? 버킷리스트 만들러 가! 


몇 년 전 나의 권유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보시려다 잘 안되셨었는데 정년퇴임을 10년 정도 앞두신 아빠께서 이번엔 단단히 마음을 먹으신 모양이었다. 보라카이로 가는 새벽 비행기 안, 사람들은 하나 둘 잠이 들고, 나의 노트북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지는 그곳에서 아빠의 종이 넘기는 소리도 함께 울려 퍼졌다. 다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를 참고하고 싶어서 준비하셨다며 종이 뭉치를 보여주시는데 아빠의 결심과 준비성에 다시 한번 놀란 순간이었다. 보라카이로 향하는 그 비행기 안, 아빠와 나의 꿈이 어두운 새벽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보라카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 아빠  2016. 겨울

 아빠의 그 작은 시작은 여행 시작 후 진가를 발휘했다. 해양레저스포츠가 발달한 보라카이에서 우리 가족은 원래 호핑 투어만을 신청해놓은 상태였는데 도착한 후 아빠가 엄마와 언니, 나에게 넌지시 스쿠버다이빙도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문득 비행기 안, 아빠의 버킷리스트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미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세 사람에게 정말 좋은 기회라며 꼭 해보라고 권유했고, 아빠께서도 말씀하셨다.

"이왕 이 곳에 왔고 돈이 아깝다는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할 수 있을 때 도전하는 게 좋을 거 라 생각해." 그렇게 아빠는 보라카이의 드넓은 바다 아래서 이전에는 모르셨던 새로운 기쁨을 경험하셨다.  그리곤 이제는 체험이 아닌 나처럼 자격증에도 도착하고 싶다며 싱글벙글 하셨다.



난 분명 청춘들의 여행은 더 특별하고,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가 여행의 본질과 가치를 바로 알고 작지만 하나씩 새로 시도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는 여행은 우리를 이끌 것이며 그 여행은 켤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모든 청춘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루고픈 소망들을 품고 떠난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그러한 일들은 분명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쌓여 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우리 그 날을 함께 기대하자!


                                                                                  

                                                                                                                                      (다음 글 : 조금만 더요!)



지극히 개인적인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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