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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your choices reflect

“May your choices reflect your hope, not your fear” - Nelson Mandela


나는 사람을 볼때 그 사람의 말보다는 행동을 본다. 연애할때 남자를 보는 방법에서 배웠달까 ㅎㅎ

아무리 말로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남자여도 사실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행동을 보여줘야 그 사랑이 진실되어 보이는 것처럼.

요즘은 아무래도 ‘말’의 시대인 것 같지만, 유튜브던 각종 강연과 방송이던, 모두 말 잘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말’이 범람하는 시대이지만,

그 말, 혹은 그 표면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내가 진정으로 가진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잘 프로세싱하고 심사숙고하고 그 중에 중요한것만을 걸러내어 밖으로 내놓는 것인지를 감지하려고 노력한달까.


모르는 사람의 말은 그 이면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그들의 말을 행동으로 잘 보여주는 지를 본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도 나의 행동을 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리겠지, 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과연 내 말을 행동으로 잘 이행하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귀찮아서, 몸이 힘들어서, 혹은 갑자기 주어진 상황인데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내 생각이나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한 적은 없을까?

혹은 나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리더로서, 팀장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행동으로 비춰진 적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넬슨 만델라의 quotation을 보게 되었다.

“May your choices reflect your hope, not your fear.”


매일매일의 작은 행동,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선택의 순간에 나의 가치관이 반영되게 된다.

이때 나의 가치관이나 선택의 기준을 명확히 세워두어야 좀 더 나은 선택을 작게 나마 내릴 수 있고,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내가 된다.


직장에서 push 당해서, 상황에 밀려서,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주어지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깊은 고민 없이 대충 내린 선택들이 그동안 꽤 많았다.

내 삶도 그랬다. 내가 주체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렸던 결정은 29세~30세 정도가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에는 약간 “삶이란 그냥 살아지는 거지”라는 자세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내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당시의 인생을 대충 살았던 것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어떤 목표를 명확하게 갖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수십년을 보냈었다 보니, 그리고 그렇다고 내 목표가 빨리 뜻대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보니, “이제 그럼 물흐르는대로, 인생 별거있나, 살아지는 대로 살아보자”라는 자세로 전환하게 된 시점이 있었던 것이다.


삶에는 누구나 그런 시점이 있으니까, 그랬던 나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런 자세로 살며 얻은 것도 많았고, 삶을 더 rich 하게 즐길 수 있기도 했다.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내 삶을 컨트롤하다보면 다양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선순위에 맞추어 좁혀서 선택하고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삶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아무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경험하고, 배울건 배우고 즐길건 즐기고, 그렇게 살수 있었다. 덕분에 시야도 넓어진 것 같고, 마음적으로도 더 여유가 생겼달까?


이런 삶의 방식은 아이를 키우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태도가 탑재되었는지도? 아무래도 목표를 정하고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방식을 가진 사람의 경우 자기 아이에 대해서도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는 경우도 많은것 같은데 (일례로 최근 본 어떤 변호사 유튜브에서는 가훈을 만들고, 아이들의 목표를 유럽의 중산층의 정의로 정해두고 교육을 해간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나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아무리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잡아서 아이를 닥달해도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른 성격일수도 있고, 자기 생각이 있고 오히려 내가 목표를 정하고 아이를 끌고 가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엄마는 뒤에서 아이를 밀어주는 역할만 해야하고, 끌고 가는 것은 본인이 되도록 교육해야하기 때문. 나는 관료형 인간이지만 아이가 예술가형이라고 한다면, 이런 방식에는 큰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다만, 십년을 그렇게 살다보니, 직장이나 나의 삶에서는 내 삶이 목표없이 부유하는 삶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나에게 일어난 여러 상황에서 “내가 너무 수동적으로 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매일의 삶에서 딱히 이루고자 하는 게 없고, 그렇다보니 모든 일에 수동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내게 오는것을 편견없이 즐기지만, 내게 오지 않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을 뻗어서, 가져오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반응하다보니, 먼저 생각하지 않고 상황이 일어나면 반응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황이 일어난 후 반응을 하다보면 상황이 예기치 못했거나 그 상황에 대한 태도를 빠르게 정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내 삶의 목표가 명확했다면, 태도 설정도 좀더 빠르게 될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목표에 맞게 좀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희망찬? 혹은 공격적인? 쪽으로 행동하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나의 경우 목표가 없어서 감수하고 싶은 게 없었고,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 일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했을 때의 위험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며 행동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넬슨 만델라가 말한 것에서 let my fear decide or refelct my fear 하게 된 것이다.


May your choices reflect your hope, not your fear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내가 꿈꾸는 것, 희망하는 것, 목표로 하는 것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보아야 할 나의 주제이다.


한 30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십년은 다르게 살아보았으니, 어쩌면 나머지 십년은 또 다르게 살아볼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가 지난 글에 썼던 40대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40대를 어떻게 살건지, 계획도 목표도 한번 만들어볼까 싶다. 물론 나에 대해서만, 내 아이가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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