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밥 Aug 13. 2020

나의 외할머니

     

몸도 마음도 무척 아팠던 그해 여름. 회식한다고 나간 남편이 휘청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당신, 아홉 살 마음 책이라고 알아? 그거 잘나가는 책이래서 주문했으니까 내일 서점에서 찾아와.”

뜬금없는 전화에 이 인간이 뭐래는 건가 무심히 넘겼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와 동시에 2학년 전학을 했던 첫째아이는 학교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힘든 시간이 있었다. 결국은 아이 문제가 아니라 내 영향이 컸던 일이였는데 남편도 내색은 안했지만 신경이 쓰였는지 엄마들이 많이 사가는 책이라는 서점 직원의 말에 <아홉 살 마음사전>을 주문한 모양이다. 며칠 뒤 남편이 퇴근하며 딸에게 건네며 “아빠 선물이다.” 했을 때 책이 여서 그저 그랬지만 선물이라는 말에 웃어 보인 딸의 모습이 스친다. 자기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여서 집에서도 그렇지만 학교에서도 억울한 일을 많이 겪는다. 우리가 세심하게 채워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아빠가 딸에게 선물한 책을 지금 내가 읽어본다.     

몇 장 넘기자마자 ‘그리움’에 멈춘다.

<그리움>

‘두 밤만 더 자면 아빠가 오네.’

출장간 아빠가 돌아오는 날에 쳐 놓은 동그라미를 오래오래 바라보는 마음.―p21     

내 그리움은 아빠보다는 사실 외할머니다. 중2 겨울 방학 때 설날을 앞두고 우리 집에 오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의 딸처럼 나도 어릴 때 감정표현이 서툴렀다. 원래 말없고 조용한 애들이 크게 분노하면 앞뒤 가리지 못하고 날뛰는데 내가 그랬다. 내 계산은 그동안 꾹꾹 참았다가 화를 내는 거였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특히나 언니들과 싸울 때면 나보다 훨씬 몸집도 작고 약한 큰언니한테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언니가 몽둥이를 꺼내 들면 끝까지 싸워보겠다고 험하게 욕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싸움이 있고 나면 외할머니는 나를 크게 혼내기보다 끌어안고 기도를 하셨다.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는 날은 4남매가 목을 빼고 기다린다. 대문을 열면서 우리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들어오는 할머니 목소리에 맨발로 뛰쳐나가서 제일 먼저 이렇게 묻는다.

“며칠 있다 갈 거야? 오래 있다 갈 거지?” 뒤뚱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닌다. 외할머니한테서 풍기는 미제 화장품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교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외할머니한테 최초로 대들었던 일이 있다. 겨울에 교복 블라우스 대신 입던 목폴라 티셔츠를 세탁했는데 섬유 소재가 손빨래 했어야 되는 옷을 세탁기에 돌려서 쪼글쪼글해졌다. 학교 갔다 와서 빨래를 개는 할머니를 보고 옷이 줄어들고 쪼글해진게 마음에 안 들어서 불같이 화를 냈다. 더구나 누렇게 뭔가에 색이 들어서 이건 버려야 될 지경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티셔츠였고 엄마가 또 사줄리 없는걸 알기 때문에도 더 속상했다. 속상함에 투정을 한참 부리고 이틀 뒤에 학교에서 돌아오니 할머니가 뭔가를 다림질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 목폴라 티셔츠다. 누렇게 색이 들은 옷을 삶아서 다림미로 쭉쭉 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난리를 치며 투정 부렸던 게 순간 미안해졌다. 말없이 다림질을 하는 할머니는 다 됐다고 옷을 들어보였는데 이게 웬일. 이번에는 실크처럼 반짝거리며 찰랑거리는 것이다. 맙소사! 이건 뭐 울 수도 없다. 괜히 할머니한테 투정부리고 버릇없게 굴었다고 언니들한테 더 혼나기만 했던 기억. 그래도 나한테 외할머니는 엄마 이상으로 사랑이다. 평소엔 조용하던 나도 화가 쌓이면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난폭해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큰소리를 내고 혼내기도 했지만 자존심까지 무너뜨리지 않고 많이 안아주었다.      

돌아가신 뒤로도 우리끼리 누워서 외할머니 보고 싶다고 울다 잠든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글을 쓰면서 나와 친정엄마와의 거리를 생각했다. 몇 년 전 치열하게 싸우고 지금은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데 못내 아쉬운 것은 내가 내 딸들의 나이였을 즈음에 외할머니와 쌓아갔던 정만큼 내 아이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도 그 당시 나에 대한 아련한 기억도 추억도 기억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쉽다. 그저 살기 바빴을 엄마였기에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엄마도 엄마가 무척 보고 싶고 그립겠지. 나 또한 엄마 나이쯤에 엄마가 무척 그립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