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될 때 길가에 핀 어린 쑥을 보면 가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놀잇감이 없어서 호미 들고 놀이터 언저리 밭을 다니며 엄마랑, 할머니랑 또는 동네 아이들이랑 냉이며 쑥을 뜯었다. 진한 카페라테 향만큼이나 코를 자극시키는 쑥 냄새에 취해 종일 캐다 보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냉이는 호미로 살살 흙을 긁어 뿌리가 잘리지 않게 뽑고, 쑥은 작은 칼로 어린잎만 잘라 양 옆 주머니에 나눠 담아 집에 갔다. 내가 캐간 쑥이랑 엄마, 할머니가 캐온 거랑 깨끗이 씻어 쌀가루를 넣어 반죽해 쪄낸 쑥개떡.
참기름을 발라 고소하고 쫄깃하게 한 입 베어 물어 쫄랑쫄랑 씹는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금도 가끔 시장에 가면 떡집 앞을 서성인다.
이쁘게 빚어진 것 말고 그야말로 할머니가 주물러 쪄낸 듯한 쑥개떡을 찾으러 말이다. 옛날 그 맛은 아니어도 다시 재현할 수 없는 나의 소울 푸드 중 하나여서 꼭 먹고 만다.
동네 아이들 중엔 또래 친구만 있는 게 아니라 언니 오빠 동생들 모두 섞여 있다.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 노는 게 가장 재밌긴 한데 조무래기 동생들을 끼워줄 리 없고 힘없는 우리는 구경꾼 역할이 제격이었다. 구경하는 것도 지치면 조용히 집에 가서 호미나 작은 칼을 갖고 나와 지천에 깔린 쑥을 뜯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 마음에 엄마를 돕겠다는효심을 발휘해 칭찬이라도 받길 원했던 것 같다. '쓸데없이 이런 걸 하고 다녀!'라고 말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 이걸 네가 뜯어 왔어? 아이고 기특해라.'하고 오히려 좋아했다. 기특하다는 말 한마디가 듣기 좋아 틈만 나면 쑥을 뜯었던 아이.
나는 인정이 필요한 아이였다.
강산이 세 번 바뀌어 마흔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했는데 쑥을 뜯어갔던 때와 다르게 기대는 상처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어린 내가 쑥을 뜯어 왔을 때 나를 대했던 그 눈빛과 말의 리듬을 나는 바라 왔다. 나이를 먹어도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직도 어린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나.
나 스스로 잘했다고 인정했던 것보다 남에게, 가족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엄마는 내가 쑥을 해오지 않았어도 충분히 나를 사랑으로 키웠을터.
지금도 어디선가 인정받고 싶은 목마름으로 계속 우물을 찾고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본다. 주위의 평가와 인정에 목메지 않아도 충분히 나는 소중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