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밥 Mar 25. 2022

책 읽기가 먹고 사는 일에 미치는 영향이란

나는 책읽기에 진심이지만 아닌 사람도 있으니까요


'책 바침'이란 독서 모임이 만들어지고 처음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들의 모임에서 점차 일반인 모집으로 확장되었다. 가장 인상 깊은 회원 한 명은 지금도 독서를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한데 당시 독서 모임에서 그녀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자기 성장'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책을 읽고 있던 터라 우리가 읽는 책들은 거의 성공 저서, 자기 계발 도서였다. 그녀는 일반인 모집에 참여해서 6개월가량 활동한 거로 기억하는데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이런 책 읽는 게 부담스러워요. 매번 완독도 못 하고 모임에 제때 참여도 못 했지만 저는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게 당장 내가 먹고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직업이 3개예요. 오전엔 보험회사에 출근하고 오후엔 빈 일정을 이용해 정수기 코디 일을 해요. 주말엔 요양 보호사 일도 잠깐씩 하고요. 월 1회 쉬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엔 아무것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잠만 실컷 자고 싶더라고요.
이 모임은 애초 모임을 일군 선생님 때문에, 그 선생님만 바라보고 왔어요. 그냥 그분의 말 한마디에도 제가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마치 그녀가 푸념을 늘어놓았나 보다 상상할 수 있으나 실제 그날 얘길 할 때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고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한 집안의 경제적 가장 노릇을 하는 그녀로서 직업을 세 개나 갖고 있으면서 성공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아무리 애를 써봐도 쫓아가려니 가랑이만 찢어질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매번 모임이 있으면 늦게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기도 했고, 책을 읽어 온 적이 드물어 다른 사람들의 얘기만 듣다 가곤 했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회원들의 얘기를 들으러 오는 그녀의 정성을 우린 늘 높이 평가했다.  우리가 몰랐던 그녀의 진실은 하나 더 있었다. 언젠가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을 실행에 옮겼다. 지역 대학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서 소묘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늘 말도 없고 허옇게 질렸거나 핏기 없는 얼굴로 피곤이 역력한 그였는데 새로운 일상이 빛을 가져다주었는지 어느 날 모임에 와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소개해주었다. 성공 도서가 힘들고 와닿지 않는다고 했던 그때와 다르게 눈이 빛나고 있었다.




소묘야말로 먹고사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녀로선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성공자들의 습관을 따라 하며 내부를 축적하는 일 보다, 연필을 잡고 쓱쓱 선을 그리며 완성되는 구체물에 성취를 느낀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꾸준히 5년 동안 책을 읽고 여러 독서 모임을 경험하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독서 만이 삶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만은 아니구나. 물론 삶의 지평을 넓혀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데 독서만 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현재 내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반응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걸 배웠다.


독서는 누구에게 열려 있지만, 뭐든 다 이뤄지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아닌 거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걸….




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나의 새로운 삶의 길을 찾고 싶어 책장을 넘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뻔한 얘기 같아도 이럴 땐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 내가 독서 모임을 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남을 따라가기만 할 땐 무거운 발걸음같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고통이지만 동지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오래도록 함께 걸을 힘이 난다.




빠르게 성장하는 비법은 없는 것 같다. 남이 만들어 놓은 예쁘게 포장된 길이 나랑 안 맞는 경우도 반드시 일어난다. 나는 이런 경험을 책에서, 독서모임에서 경험했다. 비로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독서 모임은 물론, 혼자 책 읽기도 계속할 예정이다. 책 밥 오 언니란 사람이 독서 모임과 책에 진심이란 걸 한 만 명쯤 알아봐 줄 때까지 쭉.




매거진의 이전글 알아요, 내가 가장 소중한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