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들이대 본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설 쓰는 김영하 작가는 MBTI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에 일부 공감한다. 왜냐, 나는 I성향인데 호기심이 발동하면 주위에 상의하지 않고 일단 들이대 본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까짓 거 안되면 말지'
'그냥 알아만 보는 거야'라고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장치를 스스로 걸어 두는 편이다.
이번엔 지역맘 카페를 들락 거리다 레이다 망에 딱 잡힌 것이 있었다. 바로 '독서와 필사'였다.
살 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요즘 유행하는 아이들 장난감 세일 정보 있나요,
차 살 건데 싸게 해주는 딜러 소개해주세요,
분위기 좋은 카페 왔어요,
OO식당 맛있어요
등등의 온갖 글들 사이에 빛이 나는 글이었다.
'엄마들 취미 있으세요? 저는 독서랑 필사 모임 하고 싶은데 하시는 분 없나요?'
네. 바로 접니다. 저 부르셨나요? 잽싸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관심 있습니다. 같이 하실래요?'
댓글은 채팅으로 이어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날짜를 잡고 어제 필사할 책을 들고 카페에서 만났다.
도착하니 노트에 정갈하게 필사를 하고 있었다. 와... 이분 진이다. 나는 노트에 갈겨쓰고 있었는데...
독서모임 하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예전 지역 독서모임을 운영했던 <책 바침>활동할 당시의 사진과 모임 후기를 눈여겨봤었다고 했다. 인연이다.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 진다.
필사 친구는 글씨 쓰는 것과 문구류를 좋아해서 책의 문장을 옮겨 적지만 정작 책 내용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깊이 있게 책도 읽고 필사도 하면서 발전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 했고 나랑 뜻이 맞았다. 이게 얼마 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건지 신이 나서 목도 아픈데 한 시간 동안 떠들다 왔다.
최근 읽은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에서
중년에 맞이한 변화는 취미 하나 시작한 정도의 변화가 아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에게 등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p29
고 했다. 내가 맞이한 중년의 변화가 책이 아니었다면 앞에 나서기 꺼려하고 낯가림 있는 사람이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을 덜컥 만나 막힘없이 얘길 한다는 거. 취미를 넘어 내 생활의 일부가 된 게 자랑스럽다.
낮은 자존감 회복, 치유, 휴식, 관계로 뻗어 나갈 줄 상상도 못 했었다.
박완서 선생님처럼 내가 중년 여성들의 등대가 될 만큼은 못 되지만 적어도 이제 막 마흔 앓이를 시작했거나 아이들에게서 조금 자유로워진 엄마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같이 고민하고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 내가 힘들 때 도움받았던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