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딸아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독서 동아리' 만들기를 신청했다. 학부모 임원 활동 덕에 학교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길래 덥석 물었는데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닌지 후회도 했었다.
만약 신청한 사람이 없으면 뻘쭘한 기분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애초 모집 인원을 각 학년당 4명씩 받기로 했는데 중학교 1,2, 3학년이니 총 12명이 정원인 셈이다. 학년별로 골고루 모집되지 않았지만 1학년 학부모님들의 적극 참여로(불쌍해서 신청해준 것도 있는 것 같았음) 총 9명이나 모집되었다.
온라인 독서모임을 할 때도 이런 고민은 수없이 일어났다. 매달 사람이 줄어들 때면 '내가 진행을 못하나', '공감할 만한 책이 아니었나'등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다고 모두에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학부모 독서 동아리를 시작하면서 역시 똑같은 고민이 들었다. 다행히 아홉 명의 학부모들이 모였고 그들이 기대를 품고 온 만큼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첫 모임날, 18개의 눈이 나를 향하는 순간 마음속으로 번개맨 파워를 외치며 입을 뗐다.
"괜히 일을 벌인 게 아닐까 자신 없었는데 이렇게 모여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마음이 무척 아프고 힘들었을 때 책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라는 공통분모로 만났지만 누구의 엄마 말고 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를 위한 책 읽기가 되는 모임이 되면 좋겠습니다."
첫 말을 하고 난 뒤 심장은 더 요동쳤다. 평소에도 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할 내 얘기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난 어떤 자세를 취해야 덜 상처받는지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내 눈빛이 흔들리고 말이 떨리지 않게 하려고 천천히 말하려고 애썼다. 머릿속에 말하려고 저장해둔 단어들을 엉키지 않게 조합해 내뱉으려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다시 이었다.
"이번 독서 모임을 하면서 각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는 걸 추천합니다. 나를 위한 책 읽기이니 나를 위한 공간도 마련해 보면 좋겠어요. 애들이 쓰던 노트, 테이블, 식탁 말고요."
슬쩍 둘러보니 모두 내 말에 적극 공감하는 눈치였다. 휴우... 다행이다. 잘 넘어갔군.
어색하고 긴장된 OT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집에 오자마자 필사 노트를 꾸미고
식탁 위 밖에 자기 공간이 없다고 했지만 공간 마련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반갑고 감동이었다.
독서모임 하게 돼서 친구도 사귀었다고 딸한테 자랑한 귀여운 엄마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도 있었지만 아이들 픽업이나 놀이터 외에는 바깥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임을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도 했다.
내가 선정한 책에 보이는 단어 하나하나가 자기를 가리키는 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들썩인다고 고백한 이도 있었다.
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했었던 2018년 1월, 눈물 글썽이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주저하던 내가 떠올라 순간 울컥했다. 내 얘기를 누군가 들어주고 과하게 보태는 말 없이 공감해 준 멤버들 생각에 이젠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역할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걸 메신저라고 하던가.
내 마음을 향한 비수 꽂히는 화살을 뽑아내고 큐피드 화살이 얼마든지 꽂힐 수 있게 단단한 심장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