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문을 닫고 속옷이 든 종이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런 뒤 가만 부엌을 둘러봤다. 부엌은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양 어수선했다. 개수대 위론 칼국수 그릇이 산더미만큼 쌓여 있고, 시렁에는 시든 양파와 사과 몇 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시선은 곧 가판 위의 도마에서 멈췄다. 어머니의 칼 앞에서였다. 칼은 도마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닳고 닳아 종이처럼 얇아졌지만, 여전히 신랄하고 우아한 빛을 품은 채였다. 감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밀려왔다. 뭔가 베어 먹고 싶은 욕구, 내장을 적시고 싶은 욕구, 마침 시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사과 몇 알이 보였다. 나는 한 손에 사과를 다른 손에 칼을 쥐었다. 자루는 손에 꼭 맞았다. 툭- 푸른 껍질 위로 조그마한 상처가 났다. 나는 그 안에 칼날을 박고 돌리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김애란, <칼자국> 중에서